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전국이 들끓던 1960년 4월 18일 낮 12시 50분경, 3,000여명에 달하는 고려대 학생들이 “민주주의 역적을 몰아내자”며 시내로 행진하였다. 이들은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 도착한 뒤 마산사건 책임자 처단과 경찰의 학원출입 금지를 요구하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유진오 고려대 총장과 학교선배인 이철승 의원의 설득으로 학생들이 농성을 풀고 질서정연하게 귀교하던 7시 20분경, 시위대들이 종로4가의 천일백화점(현 광장시장) 앞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100여명의 폭력배들이 나타나, 쇠몽둥이, 쇠갈고리, 쇠망치 등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무차별하게 폭행했다. 이들은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 자유당 정권과 결탁한 정치폭력배들이었다.
이 습격사건으로 한상철 학생이 사망하고, 대학생 50여명과 기자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4월 19일 서울시내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일제히 궐기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리는 4·19의 도화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