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오물투척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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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9월 22일, 김두한 의원이 사카린밀수사건에 항의하여 국회 본회의장에 오물을 던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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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66년 9월 22일, 김두한 의원이 사카린밀수사건에 항의하여 국회 본회의장에 오물을 던진 사건.
내용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주식회사가 일본에서 사카린 원료를 밀수한 사실이 9월 15일 『경향신문』의 보도로 국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66년 5월에 발생한 이 사건은 6월 초에 벌과금 추징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산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밀수’를 ‘5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한 점도 작용하여 국민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특정재벌 밀수 사건에 관한 질문」 안건을 상정·통과시키고 관계 장관들을 소환하여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 등을 추궁하였다. 여·야 양당은 대정부 질의를 통해 정부의 재벌 밀수 비호를 비난하고, 차관 자금이 어떻게 밀수품에 대한 결재에 사용될 수 있었나를 따졌으며, 삼성그룹의 관련 여부를 밝히라고 요구하였다. 또한, 관련자 전원의 즉각 구속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였다.대정부 질의 둘째 날인 9월 22일 마지막 질의자로 단상에 오른 무소속의 김두한의원은 “밀수 사건을 두둔하는 장관들은 나의 피고들”이라며 “사카린을 피고인들에게 선사한다”는 말과 함께 인분을 정일권(丁一權) 국무총리, 장기영(張基榮) 부총리 등이 앉아 있는 국무위원석에 비닐 봉지에 담아 미리 준비해 온 인분(人糞) 등의 오물을 던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사건 당일 이병철 한국비료 사장(삼성그룹회장)은 사카린 밀수사건과 관련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언론 및 학원사업에서 손뗄 것을 선언하였다. 이병철 사장은 헌납 교섭을 맡았던 장기영 부총리가 해임되자 개각 1주일 만인 1967년 10월 11일 한국비료 주식의 51%를 국가에 헌납하였다. 국회의장 이효상(李孝祥)은 김두한 의원의 징계를 요구하였고,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김두한 의원의 제명을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김두한은 국회의원직을 잃고, 국회의장모욕,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

국회 본회의에서는 ‘특정재벌 밀수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검찰과는 별도의 진상 규명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위원회는 여당의 비협조에 불만을 품은 야당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만의 단독 운영으로 조사를 종결하였다. 또한, 야당이 제출한 경제기획원장관 해임안도 부결되는 등 이 재벌 밀수 사건의 조사는 뚜렷한 결말 없이 끝나고 말았다.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히고 사업에서 물러나겠다던 이병철은 18개월 만인 1968년 2월에 경영에 복귀했다.

참고문헌

『5.16과 10.26』(이만섭, 나남, 2009)
『한국근현대사사전』(가람기획, 2005)
『호외 백년의 기억들』(정운현, 삼인, 1997)
『동아일보』(1966.9.24)
『동아일보』(1966.10.1)
『동아일보』(1966.11.5)
집필자
홍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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