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0월 민단 산하 조직으로 재일한국청년동맹(이하 한청동)이 조직되었다. 초대 의장은 곽동의(郭東儀)이다. 조직적으로는 도쿄에 중앙본부가 있고 7개 지방본부, 그리고 지부가 있으며, 세 개의 지방 협의회가 있다. 한청동은 6.15민족공동위원회, 한통련, 범민련, 범청학련에 소속되어 있다.
한청동의 전신으로는 1945년 결성된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1950년에 개편된 대한청년단을 들 수 있다.
한청동의 4대 강령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재일한국청년의 총력을 결집하여 조국의 완전한 통일, 독립을 위하여 헌신한다. 1. 우리는 모든 반민주주의 세력에 반대하여 민주주의의 올바른 발전과 실천을 위하여 노력한다. 1. 우리는 심신을 단련하고 교양을 북돋우며 우방국가의 청년들과 제휴하여 진정한 세계평화의 실현에 기여한다. 1. 우리는 재일한국청년의 민족의식을 높이며 재일거류민의 권익옹호를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
한청동의 전신인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은 1945년 11월 17일 결성대회를 개최했다. 조직적으로는 조련이 공산주의적 색채가 강해지자 이에 반대한 사람들이 주도했다. 따라서 선명한 민족주의를 내걸고 반친일을 적극 표명했다. 재일대한청년단은 민단 산하 조직으로 대한청년단의 도쿄지역적 성격이 강했다.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권일(權逸) 단장 이하 민단 중앙본부는 이를 지지했다. 그리고 쿠데타에 반대하는 한청동을 압박했다. 1962년 5월 민단 중앙본부는 중앙감찰위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곽동의 위원장에게 권리 정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1972년 7월 민단은 한청동의 산하단체 인정을 취소했다.
한청동의 주요 활동으로는 1970년대에는 19641965년의 한일 법적지위 요구 관철운동, 1969년의 입국관리법 개악 반대운동, 19721973년의 7·4 남북공동성명 지지운동, 1973년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참여, 김대중 구출운동, 반유신체제운동 등을 전개했다.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 주요 활동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반군부정치운동, 1990년대 범민족대회 추진, 범청학련 일본지역본부 구성,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지지운동 등을 전개했다. 최근에는 한글 강습회, 청년교실, 문화서클, 동기강습, 하기강습 등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