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한국공사 ()

근대사
단체
1887년부터 1906년까지 자주외교와 친미정책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공사관.
이칭
이칭
주미조선공사, 주미조선전권공사
내용 요약

주미한국공사는 1887년부터 1906년까지 자주외교와 친미정책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공사관이다. 갑신정변 후 중국이 조선의 국정 전반에 간섭하자, 조선은 자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였다. 그후 이하영·이완용·이채연 등이 대리공사로 임명되었다.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될 때까지 미국에 주재하면서 외교 현안을 처리하고 중국과 일본 등의 내정간섭과 침략을 견제하기 위한 자주외교를 펼쳤다. 정부의 요직에 발탁되어 갑오개혁·독립협회운동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일부는 친일파로 변신하였다.

정의
1887년부터 1906년까지 자주외교와 친미정책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공사관.
개설

1887년 조선은 중국의 내정간섭을 견제하고 자주외교를 펼치기 위해 박정양(朴定陽)을 초대 주미전권공사로 임명 · 파견하였다. 박정양은 공사관을 개설하고 필라델피아영사를 임명하는 등 활동을 펼쳤지만, 결국 중국의 압력으로 10개월만에 귀국하였다.

그후 이하영(李夏榮) · 이완용(李完用) · 이채연(李采淵) 등이 대리공사를 맡았고, 이승수(李承壽) · 서광범(徐光範) · 이범진(李範晋) · 조민희(趙民熙) 등이 공사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되고 마지막 대리공사 김윤정(金潤晶)이 1906년 2월 귀국함으로써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파견 배경과 목적

갑신정변 후 중국이 조선의 외교와 통상을 비롯해 국정 전반에 걸쳐 간섭하자, 조선은 러시아와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1887년 8월 조선은 중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내무부협판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였다.

이에 중국은 조선이 자국의 속국이라면서 박정양의 파견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미국의 반박 등을 고려하여 공사가 임지에서 중국공사와 함께 미국 국무부에 나가야한다는 등 3가지 조건인 영약삼단(另約三端)을 준수한다는 조건을 달아 허락하였다. 그 결과 박정양 등은 11월 12일 서울을 출발하게 되었다.

활동과 역할

초대 주미전권공사는 박정양을 비롯해서 참찬관 이완용, 서기관 이하영 · 이상재(李商在), 번역관 이채연, 안내책임자인 미국인 참찬관 알렌(Horace N. 주1 등 총 11명이었다. 박정양 일행은 일본과 하와이를 거쳐 1888년 1월 미국에 상륙하고, 1월 15일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대통령에게 국서를 봉정하고 공사관을 개설하였다. 박정양은 데이비스(Robert H. Davis)를 필라델피아영사로 임명하고 차관을 얻어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중국이 제시했던 영약삼단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해 11월 박정양은 귀국길에 올랐다.

그후 조선은 이하영 · 이완용 · 이채연 등을 대리공사로 임명하였고, 이승수(1893∼1894) · 서광범(1894∼1896) · 이범진(1896∼1900) · 조민희(1901∼1905) 등을 전권공사로 파견하였다. 이들 공사들은 미국을 비롯한 열강의 동향을 파악하고, 중국 · 일본 등의 내정간섭과 침략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알선과 개입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되고 마지막 대리공사 김윤정이 1906년 2월 귀국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주미한국공사는 특정 업무를 수행한 보빙사 등과 달리 미국에 장기간 주재하면서 외교 현안을 처리하고 자주외교를 펼쳤으며, 미국을 포함한 국제정세의 동향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였다. 그들 중에는 귀국 후 정부의 요직에 발탁되어 정치 · 외교분야에서 활동하거나 갑오개혁 · 독립협회운동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일제의 국권강탈을 계기로 매국 친일파로 변신한 자도 있었다.

참고문헌

『근대 한미관계사』(이민식, 백산자료원, 2001)
『친미개화파연구』(한철호, 국학자료원, 1998)
『韓美五十年史』(文一平·李光麟 교주, 탐구당, 1975)
「개화기 관료지식인의 미국 인식―주미 공사관원을 중심으로―」(한철호, 『역사와현실』58, 2002)
「朴定陽의 對美自主外交와 常駐公使館 開設」(金源模, 『藍史鄭在覺博士古稀記念 東洋學論叢』, 고려원, 1984)
「소위 “三端”에 대하여」(宋炳基, 『史學志』6, 1972)
주석
주1

호러스 뉴턴 알렌, 미국의 선교사ㆍ의사(1858~1932). 우리나라 이름은 안연(安連).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가 되었다. 고종 황제의 시의(侍醫) 및 외교 고문으로 있었으며 광혜원, 관립 의학교를 창립하였다. 우리말샘

집필자
한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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