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에 서울에서 출생하여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서양화 작업을 하다가 도예로 전환한 작가이다. 처음 도예를 접한 것은 1958년 한국수공예시범소(韓國手工藝試範所, 공예시범센터)를 통해서였다. 회화과를 졸업하고 조교를 하면서 부분적으로 도예수업을 진행하다가, 대학원 진학 후 1967년 교수로 임용되었다. 1968년 일본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學)에서 2개월간 일본의 도예를 경험했고, 같은 해 미국의 알프레드대학(Alfred University) 대학원에서 미국의 현대도예를 공부한 후 이듬해 귀국하였다. 1971년부터 1983년까지 일곱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각종 단체전과 기획전에 출품하였다.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의 초대 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1985년에 퇴임하였다. 2007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중 한국수공예시범소(공예시범센터)의 미국인 도예가 스탠리 피스틱(Stanley Fistic)의 보조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도자기를 처음 접하였다.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1967년 홍익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1968년 일본 도쿄예술대학과 미국 알프레드대학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초기 작품은 백자를 재현하는데 집중하였다. 형태와 유약은 전통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표면 장식에 변화를 준 것이 특징이었다. 이후에는 점차 그릇의 형태에 변화를 주거나, 표면에 색점(色點)을 찍는 등 전통적인 백자에서 벗어난 작품들로 인정받게 되었다. 1964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후 ‘국전’으로 약칭)에서 「사발」로 입선하였고, 1975년 국전에서는 「메아리」로 도예 부분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도예가로서 조선백자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통해 현대도예의 한 분야를 형성하는데 기여했으며, 도예가 현대미술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대학교수로서 수많은 도예가를 가르치고 길러내어 현대도예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공이 크다.
국전 입선(1964), 국전 특선(1966), 국전 문공부장관상(1972), 국전 대통령상(1975) 등을 수상했다.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 서울신문도예전의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