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경상북도 경산(慶山) 출생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대학(北京大學)을 졸업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서병우(徐丙佑), 홍주일(洪宙一), 이만집(李萬集), 김마리아 등과 시위운동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2년 간 복역했다. 이후 희도보통학교(현재 대구종로초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대구요업주식회사 사장을 지냈다.
해방 후 과도입법의원을 거쳐 제헌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재임 중 1949년 동료의원 99명과 함께 축첩공무원 추방에 대한 의견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1977년에 독립운동 경력이 인정되어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는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992년 7월 8일에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