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서울 출생으로, 1944년 일본 와세다대학교[早稲田大學校] 문학과를 중퇴하고 1957년 미주리대학교 캔자스시티교와 1966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57년 『코리안리퍼블릭(The Korean Republic)』 편집국장, 1960년 『한국일보』 논설위원, 1961년 주일본 대표부 공보관을 지냈으며, 1963년 『코리아타임즈(Korea Times)』 편집국장, 1967년 『중앙일보』 편집국장 및 동굴협회 이사장, 1971년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IPI회원을 지냈다.
1972년부터 공직에 몸담기 시작해 문공부 해외공보관장, 홍보협회 이사를 거쳐 1973년 2월부터 1976년 1월까지 문화공보부 차관, 1976년 1월부터 1979년 12월까지 제7대 국무총리비서실 실장, 1979년 12월부터 1980년 5월까지 제6대 문화공보부 장관을 역임했다.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언론인 출신으로서 매일 국내외 신문을 정독해 논조의 흐름을 검토하고, 문장이나 표기법까지도 꼼꼼히 신경쓰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한편 비정치적 성향이 최규하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작은 최규하’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후 캐나다, 도미니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대사 등을 역임했으며, 공직에서 물러난 뒤 언론계로 돌아와 1989년 『코리아데일리(Korea Daily News)』 사장과 회장, 『중앙일보』 편집고문 등을 맡았다. 2004년 3월 17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상훈으로는 수교훈장 광화장, 황조근정훈장, 관훈클럽 창립회원 공로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