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나무는 느릅나무과의 큰키나무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몽골, 일본 등 동양에서만 자라는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흔한 나무이지만 세계적으로는 1속 1종만 있는 희귀한 나무 중 하나이다. 학명은 Hemiptelea davidii (Hance) Planch.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의 낮은 지대에서 자란다. 건조한 환경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며, 습한 토양을 좋아하여 하천 주변이나 숲 가장자리에 주로 분포한다. 내습성(耐濕性)이 강하여 물에 잠겨도 피해가 없다. 흔한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노거수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주남리 주사골의 시무나무와 비술나무 숲이 2007년 2월 21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꽃은 4∼5월에 피며, 수꽃과 양성화가 한 그루에 같이 핀다. 열매는 시과로 편평한 반달모양이며 6월에 익어 8∼9월까지 붙어 있다. 다른 느릅나무속 식물들에 비해 열매가 비대칭이고 종자에 날개가 한쪽에만 달리며 가지에 긴 가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무는 높이 20m, 둘레 2m까지도 자란다.
시무나무는 옛 방언에 스믜나무, 스무나무 또는 스미나무라고도 불렀다. 시무라는 말은 옛말로서 스무, 즉 20(二十)을 뜻한다. 그래서 시무나무를 ‘20리목(二十里木)’이라고도 불렀다. 한자로는 자유(刺楡)라고 부르는데, 이는 가시가 있는 느릅나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오래 전부터 시무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나무였다. 크게 자란 나무는 마을의 정자목이나 먼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정표목으로 많이 심었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은 그의 풍자시에서 “시무나무 아래 서러운 손이 망할 놈의 마을에서 쉰밥을 얻어먹는다(二十樹木下三十客 四十村中五十飯).”라고 하여 시무나무 아래에서 나그네 신세의 서러움을 읊었다.
시무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치밀하여 배나 차, 가구, 기구 등의 재료로 쓰였다. 특히 차축의 재료로서 박달나무를 초유(楚楡)라 하여 으뜸으로 삼았고 다음을 자유로 여겼다. 시무나무를 추(樞) 또는 축유(軸楡)라고도 불렀는데, 『성지(盛志)』에는 “당나라 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시무나무라 하여 추라 하고, 느릅나무류 중에서 가장 장대하여 차축에 쓰이므로 축유라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무나무 잎은 느릅나무잎 떡과 함께 흉년에는 귀중한 구황식량 구실도 했다. 봄에 새로 나오는 어린 시무나무 잎은 밀가루나 쌀가루, 콩가루 등 여러 가지 가루를 묻혀서 떡으로 만들어 먹었다.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시무나무는 먹을 수 있는 구황식량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무나무는 마을 어귀에 서서 농사의 풍흉을 알려주는 농업목 구실도 했는데, 봄에 시무나무 잎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들고 시원치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하여 풍요를 비는 농민들은 시무나무의 발아에 많은 축원을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