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一夫) 김항(金恒)의 정역(正易)과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의 가르침에 의하여, 1888년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이 그의 스승인 일수(一守) 이복래(李福來)를 교주로 받들며 창교한 남학계 신종교 교단이다.
중심교리는 용화불의 강세로 후천의 용화극락세계가 개벽한다는 것이며, 수행으로는 염불과 기도 및 「오음주(五音呪)」와 「구령주(九靈呪)」 등 주송(呪誦) 수련을 하였다.
1888년 오방불교를 실질적으로 창교한 김치인은 연담의 두 아들인 부련과 일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일설에는 연담이 유 · 불 · 선 삼교의 정수를 각각 정역의 김항과 동학의 최제우 그리고 남학의 김치인에게 전수했다고 전해지나, 연배를 고려할 때 김치인이 이운규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방불교를 이어서 창교한 ‘광화교’에서는 ‘1세 교주를 연담 이운규, 2세 교주를 부련 이용래, 3세 교주를 일수 이복래, 4세 교주를 광화 김치인’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오방불교가 남학계의 종단임을 알 수 있다.
1895년 김치인의 사후에는 김용배(金庸培)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금강불교(金剛佛敎)’ 등 몇 개로 분열되었다. 이후 1930년 경에는 오방불교의 교주였던 김선기(金善基)가 ‘대화교(大華敎)’의 교도를 규합하여 ‘광화연합도관(光華聯合道官)’을 만들었으나, 일제의 유사종교 해산령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후천개벽운도와 유 · 불 · 선 삼교합일의 교리체계 속에서 불교의 미륵사상을 표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전북지역과 충남지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신종교 단체 중의 하나로서 한 때 수 만명의 신도가 있었다고하나, 활동내용은 자세하지 않다.
남학계 신종교를 대표하는 교단이었다는 점과 1895년에 일어난 남학운동이 비록 실패하였지만, 동학운동과 더불어 일제에 대항한 종교운동이었다는 점에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