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학련구국대는 1950년 7월 17일 6 · 25전쟁 초기에 ① 학도지원병 모집 업무, ② 후방 선무공작, ③ 대한학도의용대의 보완적 업무, ④ 현역입대, 참전, ⑤ 후방 치안, 정보업무 수행, ⑥ 수복지역의 선무공작 등의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총본부 위원장은 이철승이었다.
1950년 7월 말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학병을 모집하여 학도의용대를 편성해서 각 전선으로 투입하였다. 같은 해 8월 중순 이후에는 유엔군의 증강에 따라 북한군의 남하 속도가 둔화되자 후방의 민심 수습과 치안 확보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9 · 28서울수복 이후 경인지구 계엄사령관 이준식 소장이 학련구국대와 같은 일체의 학도병은 불필요하다며 해산 명령을 내렸다. 구국대는 해산 철회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가피하게 해체되었다. 다만 본부의 기간 요원만은 모두 내무부 선무공작반으로 편입되었다.
1950년 9월 4일 치안 활동 지원으로 내무장관 유병옥과 협의하여 대구에서 대한학도경찰대를 조직하여 지리산 공비 토벌에 나서기도 하였다. 부산에서는 중앙학도호국단 치안대가 조직되어 경상남도 경찰국의 후원으로 경상남도 지역의 치안을 위해 200여 대원이 관내 경찰서에 배치되었다. 9 · 28서울수복 후인 10월 말경에는 치안 유지 목적으로 이북 지역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대한학도의용대가 국방부 정훈국 지휘 하에 활약하였던 것에 비하여 전국학련구국대는 내무부 협조를 얻어 활약하였다. 전국학련구국대는 대한학도의용대와 함께 학생 신분으로 국가의 위기에 분연히 일어나 투쟁하였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