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공보 ()

개신교
문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의 기관지로 1946년 창간되고 1970년에 복간된 개신교신문.
문헌/연속간행물
창간 연도
1946년
간행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간행주기
주간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한국기독공보』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의 기관지로 1946년 창간되고 1970년 복간된 기독교신문이다. 『한국기독공보』는 1946년에 창간된 『기독교공보』에 연원을 두고 있다. 1954년 9월부터 『기독교공보』는 장로회총회 기관지가 되었으나, 1966년 인쇄공장을 설치하라는 정부의 시책에 부합했다는 이유로 폐간 조치되었다. 1970년 7월 31일 『기독교공보』는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기관지로 복간되면서 제호를 『한국기독공보』로 변경했다.

정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의 기관지로 1946년 창간되고 1970년에 복간된 개신교신문.
연원 및 변천

『한국기독공보』는 그 연원을 1946년에 창간된 조선기독교회 남부대회 기관지인 『기독교공보』에 두고 있다. 이 신문은 발행인 겸 편집인이 김춘배(金春培) 목사로 초교파 신문의 성격을 가졌다. 이후 그 운영권이 김응락(金應洛), 토머스기념사업회 등으로 넘어가면서 개인 신문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1948년부터는 주1‘기독공보’로 변경했으나 지령은 『기독교공보』의 창간에서부터 계산하고 있다. 1949년 4월 당시 발행인 겸 인쇄인은 김응락, 편집인은 김춘배였고, 신문 대판(大版) 크기 2면에 국한문 혼용 내려쓰기 형태였다. 1950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경기노회가 인수하여 1회 발행하였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휴간되었다. 1951년 12월 25일 부산에서 복간(140호)된 뒤 1953년 10월 서울로 사무실을 옮기기까지 꾸준히 발행되었다.

1954년 9월부터 『기독교공보』는 장로회총회 기관지가 되었고, 1955년 1월부터 모든 기사와 제목을 한글로 전용하는 혁신을 단행했다. 1959년 장로교 교단이 분열되면서 『기독교공보』가 법적으로 통합교단에 귀속되었다. 1964년 이사장으로 김형남이 취임하여 1월부터 지면을 4면으로 늘려 발행하였다. 그러나 『기독교공보』는 1966년 인쇄공장을 설치하라는 정부의 시책에 부합했다는 이유로 제848호를 발간하고 폐간 조치되었다.

내용

1970년 7월 31일 『기독교공보』는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기관지로 복간되면서 제호를 『한국기독공보』로 변경했다. 이때부터 『한국기독공보』는 한국교회의 선교 범위를 사회, 정치, 경제 영역으로 확대하여 보았고, 기독교 언론의 주도적인 책임을 감당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전태일 분신자살사건, 긴급조치 위반 사건, 남산부활절사건, 산업선교회탄압사건, 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 등 한국 정치사의 주요한 국면마다 『한국기독공보』는 기독교 언론의 정부 비판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국기독공보』는 1997년 3월에 교계 신문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 서비스를 개시하였으며, 2001년 3월 24일부터 매주 28면 발행 체제로 전환하였다. 2007년 9월 제92회 총회에서 데일리 뉴스 신문 제작(타블로이드판)을 허락받았으며, 2009년 1월 19일에는 크리스찬 미디어를 개국하였다. 2016년 12월 22일에는 인터넷 신문을 등록하였으며, 2018년 5월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2019년 12월 31일에는 아카이브 데이터 베이스를 완성하여 검수를 시행하기 시작하였고, 2020년 11월 25일에는 디지털 아카이브 주간신문을 최초로 공개 출시하였다. 2023년 기준, 『한국기독공보』는 24면의 주간신문으로 발행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1946년 시작된 『한국기독공보』는 한국 에큐메니컬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여 왔다. 일제말 친일 세력이었던 에큐메니컬 진영은 해방 이후 친미와 친이승만 세력으로 변신하면서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교권을 유지하였다. 남부대회의 소식지로 출발한 『기독교공보』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큐메니컬 진영이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투신하자 『한국기독공보』도 이에 공조하여 에큐메니칼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때부터 『한국기독공보』는 한국교회를 넘어 한국 사회의 주2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억압받는 자들의 권리를 위해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윤춘병, 『(韓國基督敎)新聞·雜誌百年史: 1945-1985』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2003)
이해창, 『한국신문사연구』 (성문각, 1971)

인터넷 자료

한국기독공보(www.pckworld.com)
주석
주1

책이나 신문 따위의 제목. 우리말샘

주2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이용하는 도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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