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평안도 감영 소재지 평양부 일대의 자연적, 인문적 경관을 8폭 병풍에 담은 실경산수화이다. 2009년 처음 소개된 이후 ‘기성도(箕城圖)’로 지칭되다가 2018년 보물로 지정되면서 「평양성도 병풍」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제1폭과 제2폭의 북성, 제3폭제5폭의 내성, 제5폭과 제6폭의 중성, 그리고 제6폭제8폭의 외성은 1730년대 정비가 마무리된 평양의 성곽 구조를 보여준다. 내성 구역에 감영을 비롯해 행정, 군사, 제례, 문화 관련 시설과 민가가 몰려 있다. 그 밖의 영역은 자연경관 위주로 묘사되었는데, 각종 기자(箕子) 유적을 상세하게 그려 지역사적 특징이 드러난다.
화면 상단에 평양 외곽에 솟은 산들이 자리하고, 하단에는 서해로 흘러드는 대동강 물길과 십리장림이 펼쳐져 있다. 성 내외의 지리적 형세와 공공 시설물의 양태를 형상화하는 데 집중하고 인물은 그려 넣지 않았다.
주요한 지형지물에 명칭을 부기했는데, 1776년에 지어진 오순정이나 1804년 화재로 소실된 애련당 건물이 건재하다. 또한 기다란 마 껍질 모양의 필선으로 표현하는 피마준(披麻皴)과 녹색 위주로 채색한 산과 언덕, 자를 사용하는 계화법(界畵法)이 적용된 성벽과 건물, 각종 나무의 표현법과 같은 화풍상의 특징으로 보아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크기는 세로 146.5㎝, 가로 356.0㎝이다. 대형 병풍 화면을 적절히 활용해 동쪽에서 내려다본 평양성의 전체 형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지형지물을 포치하였다.
18세기 후반에 도상이 확립된 병풍 형식 평양기성도(平壤箕城圖)로서 역사적 고도(古都)이자 국방과 외교, 경제의 거점도시였던 평양부의 위용을 적절히 시각화하였다. 현존 작품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올라가며 회화적 완성도가 높아 진상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