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소양로성당(春川 昭陽路聖堂)은 1950년 1월 5일 설립되었으며, 주1는 ‘성 파트리치오’ 성인이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55년 9월 완공되었는데, 당시에는 보기 드문 반원형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근대적 양식을 도입한 교회 건축물로 평가받아 2005년 4월 15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원형 보존 공사를 실시하여 설립 당시와 같은 형태로 복원되었다.
해방 이후 춘천 지역의 교세가 확장되면서 춘천 북쪽 지역에 흩어져 있는 공소를 관할할 새로운 본당의 설립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당시 춘천지목구장인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퀸란(Thomas F. Quinlan, 具仁蘭) 몬시뇰은, 1950년 1월에 소양로 본당을 죽림동 본당에서 분리하여 설립하였고, 안토니오 콜리어(Anthony Collier)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콜리어 신부는 춘천 소양로성당에 남아 신자들을 돌보다가 복사(服事) 김경호 가브리엘과 함께 인민군에게 체포되었지만, 자신은 총에 맞아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복사를 끌어안고 넘어지면서 복사의 생명을 살린 주4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이에 춘천교구에서는 춘천 소양로성당을 ‘살신성인 기념 성당’으로 명명하고, 춘천 소양로성당에서 시작되는 순례길을 ‘평화의 길’로 조성하였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순교자들을 중심으로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주2을 추진하고 있으며, 콜리어 신부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춘천 소양동성당은 한국전쟁 기간 중에도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의해 주3이 이루어졌지만, 주임 신부는 공석인 상태였다. 이에 한국전쟁 후 1954년 8월 선종완(라우렌시오) 신부가 주임 신부에 임명되어 1년 동안 사목하였다. 1955년 부임한 제임스 부클리(James Buckley) 신부가 1955년 9월 현재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천주교 평신도 신심 활동단체인 ‘레지오 마리에(Legio Mariae)’를 춘천교구에서 두 번째로 도입하여 신자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춘천 소양동성당은 1967년 이응현(테오도로) 신부가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인 신부에 의한 사목이 시작되었다. 신부와 한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자 신자들은 신앙생활에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본당 주보 발행과 평신도 협의회 구성 등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후 부임한 신부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주일학교 활성화, 다양한 신심단체의 창립, 장학회의 출범, 교육관의 신축 및 신용협동조합의 출범 등 다양한 사목활동을 하였고, 선교의 활성화와 미사와 기도에 충실한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