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염송사원(重編拈頌事苑』 30권은 일연의 제자인 보감국사(寶鑑國師) 혼구가 『선문염송사원』을 중편한 것으로 현재 전하지 않는다.
12세기 이후 고려에서는 수선사(修禪社)를 중심으로 간화선(看話禪)이 표방되어 선사상(禪思想)이 불교계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선적(禪籍)이 많이 간행되었는데, 이 가운데 수선사 2세 혜심(慧諶, 1178∼1234)은 선문공안집(禪門公案集)인 『선문염송(禪門拈頌)』 30권을 편집하였다. 이는 당시 불교계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저작이며 공안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연은 정안(鄭晏)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주석하면서 혜심의 『선문염송』을 열람하고 선사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었다. 이에 일연은 『선문염송사원』(30권)이라는 『선문염송』 해설서를 편찬하였다. 당시 일연은 송대 선적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교선 양종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수선사 단계보다 더욱 다양하게 송대 선사상을 섭렵하여 간화선에 대한 높은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선문염송사원』을 편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혼구는 『호산록(湖山錄)』에 혜심의 선풍을 전해 받았으며, 원나라 승려 몽산화상 덕이(德異, 1231∼?)와 교유하였던 승려로 폭넓은 선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가지산문이 일연을 정점으로 크게 세력을 형성하여 불교계의 교권을 장악하자 일연 계통에 편입된 인물이며, 일연이 입적한 1289년경에는 운문사주지, 또 일연비를 건립한 1295년 전후에는 보경사주지 및 내원당과 인각사주지를 겸임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혼구가 덧붙인 글이 있고, 『보각국사비문(普覺國師碑文)』을 찬(撰)할 만큼 일연의 선풍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중편염송사원』을 발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편염송사원』은 고려 중기 선풍의 큰 흐름과 당시 일연과 혼구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