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해로 ()

선사문화
개념
금속기 주조 시 철, 청동 등의 원자재를 녹여서 액체 상태로 만드는 가마. 무질부리가마.
이칭
이칭
무질부리가마
정의
금속기 주조 시 철, 청동 등의 원자재를 녹여서 액체 상태로 만드는 가마. 무질부리가마.
개설

고체상태의 금속을 고온으로 녹인 다음 거푸집[鎔范]에 부어 원하는 모양의 기물(器物)을 제작하는 것을 주조(鑄造)라 하며, 이때 고온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 통 모양의 가마를 용해로라 한다. 금⋅은⋅청동 등의 비철금속은 용융점이 1,000℃ 내외로 비교적 낮아 주로 도가니를 사용해 간접적으로 녹이는 반면, 용융점이 높은 철(순철 1,539℃)은 연료인 숯 등을 함께 넣고 풀무로 바람을 불어 넣어 고온에서 직접 녹일 수 있는 노가 필요하다. 따라서 용해로는 주로 철을 녹일 때 사용하는 노를 의미한다.

연원 및 변천

철을 녹여 철기를 제작하는 기술은 청동기 주조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철은 청동보다 용융점이 훨씬 높아 더 발전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철 주조기술은 중국 춘추(春秋)~전국(戰國)시대 조기(早期)에 개발되어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발전하였으며, 이 중 연(燕)나라 계통의 주조철기 제작기술이 서기전 2~1세기경 한반도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 주조용 용해로는 청동 주조용 용해로 혹은 도가니보다 높은 온도를 견뎌야 하므로 두께가 더 두텁고 내화성이 뛰어난 재료를 사용하였다. 초기에는 크기가 작은 노에서 끌, 괭이 등의 소형 철기를 제작했으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점 커져 조선 말기에는 한 번의 용해조업으로 50개의 가마솥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현대의 제철에서는 고로(高爐)를 사용해 원광에서 곧바로 용융상태의 선철(銑鐵)을 생산하기 때문에 용광로(鎔鑛爐)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어 있다.

내용

전통방식에서의 철기 제작은 철광석⋅사철 등의 원료 채광→세척⋅선광⋅배소→제련→정련(정련단야⋅단련단야⋅용해정련)→단야⋅용해 등의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데, 이 중 용해공정은 거푸집에 흘려 부을 용탕을 만들기 위해 탄소 함량이 높은 주철(鑄鐵: 무쇠)을 노 안에서 고온으로 녹이는 것이다. 제련 및 정련을 통해 생산된 판장쇠[鐵鋌]를 연료인 숯과 함께 용해로 안에 넣고 점화한 다음 지속적으로 풀무질을 해 1,200℃ 이상의 고온상태를 유지하면 철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완전히 용융되어 액체상태가 된 철을 도가니로 푸거나 탕도(湯道)로 흘려 미리 준비한 거푸집에 부으면 이것이 굳어 원하는 모양의 철기가 제작된다. 원자재인 판장쇠에는 여전히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제거해야 우수한 재질의 주조철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용해 시 석회⋅동물 뼈⋅패각 등 칼슘(Ca) 성분을 같이 넣기도 한다.

용해로는 점토에 볏짚 등의 초본류를 섞어 쌓아 올리는데, 발굴된 유적이나 조선후기 풍속도 등으로 보아 원통형 혹은 원추형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거푸집은 점흙이라고 하는 부드럽고 점성이 강한 황토를 이겨 원하는 철기의 틀로 성형한 다음 가마에서 구워 사용한다. 철기의 주조에는 용해로뿐만 아니라 노에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한 풀무와 송풍관(바람골), 원하는 기물의 틀이 되는 거푸집, 작업을 위한 각종 도구 등 다양한 시설장비가 필요하다.

현황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 용해로는 서기 2세기경부터 주조괭이 제작이 시작된 경주 황성동 제철유적에서 조사되었는데, 1993~2013년 11차례의 발굴조사에서 모두 28기 이상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용해로 외에도 단야주거지 및 공방지 21기, 정련단야로(精鍊鍛冶爐) 8기, 제강로(製鋼爐) 7기 등 모두 64기의 제철공방지가 조사되었고, 노 벽체⋅슬래그(Slag)⋅주조괭이 거푸집·철 덩이〔鐵塊〕·철 조각〔鐵片〕·물방울모양〔粒狀滓〕 혹은 비늘모양〔鍛造薄片〕 철 찌꺼기 등의 제철관련 유물이 출토되어 원삼국시대 우리나라 최대 철주조공방지임이 드러났다. 원래의 모습이 가장 잘 남아 있는 황성동 886-1번지유적 용해로 3호는 안지름 55㎝, 벽체 두께 8~10㎝의 원통형이며, 짚을 섞은 점토를 사용해 노벽을 쌓아 올렸다.

이 외에도 원삼국~삼국시대 연천 삼곶리, 진천 석장리, 울산 중산동, 광양 도월리, 서울 풍납토성, 경주 덕천리, 전주 중동 큰동네, 통일신라~고려시대 거창 정장리, 동해 지상사지, 조선시대 울산 둔기리, 하동 탑리 등의 유적에서 용해로 및 주조와 관련된 유구⋅유물이 조사된 바 있다.

이 유적들에서는 주조에 사용되었던 거푸집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은데, 황성동유적을 포함한 원삼국~삼국시대 유적은 주조괭이 거푸집 일색이고 둔기리유적을 비롯한 통일신라~조선시대 유적에서는 주로 솥의 거푸집이 출토되었다. 이 외 지상사지에서 조사된 유구는 종을 제작했던 주종(鑄鐘) 유구로 추정되고 있으며, 19세기 후반 풍속도인 김준근의 가마점에는 앞창이 있는 직경 3m 정도 크기의 원추형 용해로가 묘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전통방식의 주조철기 제작기술은 무질부리 등의 이름으로 조선후기까지 이어져 오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제주에서는 덕수리 불미공예(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1986년 지정)가 전승되어 오고 있으나 목탄이 아닌 코크스를 연료로 사용하고, 손풀무나 발풀무가 아닌 기계풀무로 송풍을 하는 등 원형이 크게 변형되었다. 용해로를 사용한 전통주조기술은 고대로부터의 높은 기술수준을 보여주는 우리의 소중한 겨레과학기술문화로, 고고학적⋅과학적 고증과 실험을 통한 그 기술복원이 시급하다.

참고문헌

『불미기술 』(윤용현 외, 국립중앙과학관, 2013)
『한반도의 제철유적 』(김권일 외,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2012)
『한국 산업사 연구 』(권병탁,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4)
「영남지역 조선시대 제철문화의 기초적 연구-석축형제철로의 설정-」(김권일, 『영남고고학』50, 2009)
「경주 황성동유적 제철문화의 연구」(김권일, 『영남문화재연구』 22, 2009)
「한반도 초기철기문화의 유입 양상」(이남규, 『한국상고사학보』 3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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