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송정동유적(東海松亭洞遺蹟)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송정동에 있는 철기시대의 취락유적이다. 다양한 평면 형태의 철기시대 집터가 다수(400여 기) 확인되었으며, 그 내부에서는 송풍관 및 쇳조각과 같이 철기 생산에 관련된 유물과 함께 작살, 고래 뼈 등의 고래 사냥과 관련된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동해송정동유적은 철기시대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사회구조로 발전해 가는 양상과 송정동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이것은 실직국(悉直國)의 비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동해송정동유적에 대해서는 여러 기관에 의해 28회의 크고 작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지역에 따라 크게 Ⅰ~Ⅹ으로 구분된다.
송정동유적Ⅰ은 1996~1997년 동해 항만지구 확장공사에 앞서 관동대학교가 발굴 조사하였다. 철기시대 집터 4기가 확인되었으며, 1호 집터에서는 경질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 U자형 삽날, 쇠화살촉, 쇠투겁창, 은제 귀고리, 대롱옥, 유리구슬 등이 출토되어 현재까지 조사된 송정동 지역의 집터 가운데 가장 위계가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정동유적Ⅱ · Ⅲ은 1999~2000년에 강원도 동해시 중심도로 개설 과정에서 강릉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각 구역에서 철기시대 집터 46기 · 11기가 확인되었고, 송풍관 및 쇳조각과 같은 제철 관련 유물이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송정동유적Ⅳ는 2005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2기의 용도 미상 유구와 원형 유구 7기가 확인되었다.
송정동유적Ⅴ는 강원도 동해시 국민임대주택 건립 부지로 예정되었던 구역으로, 2004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시기를 달리하는 3개의 문화층이 발견됨에 따라, 공사를 중지하고 강원도기념물로 지정 · 보호되었다. 약 35~40동의 철기시대 집터가 밀집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송정동유적Ⅵ · Ⅶ · Ⅷ은 2006~2007년 예맥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송정동유적Ⅷ에서는 철기시대 집터와 함께 폐기장 1기, 정련단야로(精鍊鍛冶爐) 1기가 확인되었으며, 경질민무늬토기, 경질・도질의 타날문토기, 쇠도끼, 쇠화살촉, 쇠낫, 청동방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송정동유적Ⅸ · Ⅹ은 2009년 강원고고문화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다수의 철기시대 집터가 확인되었으며, 경질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 쇠끌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동해송정동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송정동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영동지방 최대의 철기시대 마을 유적이다. 현재까지 조사가 이루어진 철기시대 단일 유적 중 가장 많은 수의 집터(400여 기)가 확인된 사례로 유구의 밀집도도 높은 편이다.
집터는 철(凸)자형, 방형, 여(呂)자형의 다양한 평면 형태가 출토되었으나, 철자형 집터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집터는 대형화되면서 구덩이의 깊이도 상당히 깊게 축조되었다. 남쪽 단벽(短壁)에는 출입구가 붙어 있는데, 영동지방 다른 유적의 사례에 비해 출입구를 넓게 마련한 특징이 있다.
출토 유물은 적갈색경질민무늬토기, 회청색타날문토기를 비롯하여, 송풍관, 쇠화살촉, 쇠칼, 쇠토끼, 철사, 재갈, U자형 삽날, 낚싯바늘, 쇠낫, 쇠칼, 꺾쇠, 쇠찌꺼기, 쇠솥 등 매우 다양하다. 그중 송풍관 및 철제 유물은 동해송정동유적이 철기 생산의 거점이었을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또한, 대형 쇠끌(길이 23.1㎝, 너비 4.2㎝, 두께 3㎝)과 작살(전체 길이 1.2m, 작살 길이 36.5㎝, 폭 15㎝, 두께 1.3㎝), 고래 뼈를 통해 철기시대 이 지역에서 고래 사냥이 빈번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주변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선사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할 가능성이 크다. 1982년 송정동파출소 신축 중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 간돌검 1점과 돌화살촉 6점이 출토되었고,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조각도 빈번히 수습되고 있다.
동해송정동유적은 지금까지 강원특별자치도 지방에서 확인된 마을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다수의 집터에서 철과 관련된 유물들이 상당수 출토되어 철기 생산의 거점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철기 문화의 발달은 건축 기술과 조선술 및 항해술의 발전 기반이 되어 생활양식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농기구와 목공구의 발달을 통해 축조된 대형 집터는 공간 분할이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로 안전된 생활을 영위하였던 송정동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다.
동해송정동유적은 대규모의 취락이 형성되고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사회구조가 마련되면서 국가 단계로 발전해 가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이것은 실직국(悉直國)의 비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