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용전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유리구슬 · 청동조각 등이 출토된 널무덤. 목관묘.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유리구슬 · 청동조각 등이 출토된 널무덤. 목관묘.
개설

2003년 12월 29일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에 거주하는 이칠형씨가 자신 소유의 용전리 1297-2번지 밭에 포도나무를 심기 위해 구덩이를 파던 중 동모, 철모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어 영천시에 신고하였다. 이에 경주박물관에서 2004년 3월 10일부터 3월 19일까지 긴급수습조사를 실시하여 동과, 금동노기 등을 비롯한 다수의 철기와 목관묘 1기를 확인하였다. 유구의 정확한 성격 파악을 위해 3월 20일부터 4월 21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내용

묘광의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일치하는 동-서 방향이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에 가까운 말각장방형이며, 생토층인 암반층을 파고 만들었다. 목곽묘 내부에는 요갱을 설치하였으며, 바닥에 철기를 부장하고 그 위에 관을 설치하였다. 묘광 내부는 암반층을 깨어 파낸 잔돌과 적갈색 점토, 황갈색 점토 및 크기 20~30㎝의 할석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묘광 내부토층의 함몰상태로 보아 봉토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 유구 벽면은 요철이 심하며, 비스듬히 굴착하였다. 바닥면도 요철이 심하여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요갱까지 비스듬히 이어진다. 관과 굴광 사이에는 보강토를 채우고, 관 상면에 동제과초, 동과 등이 부장되었다. 묘광의 크기는 길이 325㎝, 최대폭 165㎝ 정도이다. 묘광의 깊이는 어깨선에서 바닥까지 265㎝이며, 요갱부 바닥면까지의 깊이는 275㎝로 매우 깊은 편이다. 유물은 주로 보강토 상부 및 목관과 묘광 사이 보강토, 목관 내부 등에서 출토되었는데 동과, 동제과초 등의 청동유물과 주조철부, 와질토기 등이다.

요갱의 형태는 암반층을 파서 만들었기 때문에 부정형의 육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크기는 최대길이 110㎝, 최대폭 80㎝, 깊이 10~12㎝ 정도이다. 요갱 내부에서는 작은 유리구슬, 골(骨)편, 칠피편, 청동편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중 오수전과 동경 편은 기원전 1세기 중·후반에 속하는 것으로 이와 유사한 시기의 유구로 창원 다호리 1호묘, 밀양 교동 17호묘, 경주 조양동 38호묘, 평양 정백동 37호묘 등이 있다. 출토된 토기는 완형이 한 점도 없는 점으로 보아 부장 당시 파쇄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동모, 철부, 철겸 등을 구부리거나 깨어서 매납한 것과 같은 양상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목곽묘에서 출토된 유물 중 금동노기는 남부지역에서 최초로 출토된 것으로 오수전 등을 통하여 철을 매개로 중국과의 교섭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교섭은 해로가 아닌 상주-대구-영천-경주를 연결하는 내륙루트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영천 용전리유적』(국립경주박물관, 2007)
집필자
윤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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