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화장동 화산·월하동 지석묘 ( · )

선사문화
유적
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 · 월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에 축조된 고인돌. 지석묘.
목차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 · 월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에 축조된 고인돌. 지석묘.
내용

1998년 순천대 박물관에 의해 여수시 화장동 화산마을에서 6기, 월하동에서 1기의 지석묘가 발굴조사되었다. 화산지석묘군은 여수시 화장동과 여수시 소라면의 경계지점인 화산마을 서쪽 구릉사면(해발 52∼56m)에 위치한다(화장동 512·555 번지). 발굴조사 이전에 이미 중장비에 의해 지석묘 상석(上石)의 대부분과 매장주체부 일부가 이동되거나 파괴되어 있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150∼300㎝, 너비 130∼260㎝, 두께 40∼150㎝이다. 상석의 무게는 2∼15톤 정도이며, 굄돌(支石)은 2개 내지 4개가 확인되었다.

조사결과, 6기의 지석묘 외에 상석이 없는 석곽묘 10기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상석이 없는 석곽묘도 지석묘의 하부구조와 밀접한 관련성이 확인되어 일정한 기획성이 엿보인다. 두향(頭向)은 대개 동향(東向)으로 추정된다.지석묘군의 서북쪽 가장자리에서는 동시기의 고상건물지(高床建物址) 2기가 확인되었다. 화산지석묘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마제석검 1점, 마제석촉 6점, 유구석부 1점, 숫돌1점, 무문토기, 홍도 등이다. 유적의 편년에 대하여 보고자는 청동기시대 전기 후반대에서 중기에 걸치는 시기, 절대연대상으로는 기원전 8∼5세기로 보았다.

월하동 지석묘는 구릉 하단부에 1기(2.5톤)가 독립되어 확인되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168㎝, 너비 140㎝, 두께 55㎝이다. 매장주체부는 석곽형이며, 출토유물은 무문토기편에 한한다. 발굴조사 완료후 지석묘들은 여수시 화장동 공원부지에 이전·복원되었다.

의의와 평가

여수화장동화산지석묘는 청동기시대 단위 친족집단의 분묘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지석묘와 석곽묘들은 석곽의 축조방법, 바닥석과 뚜껑돌 상태, 구획석, 적석, 장축방향, 규모, 인접도 등에 의해 세분이 가능하다. 그리고 석곽의 규모나 축조방법이 다양하여 신전장(伸展葬), 굴장(屈葬), 세골장(洗骨葬), 유아장(幼兒葬) 등의 여러가지 장법(葬法)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여수 화장동 화산·월하동 지석묘』(최인선·이동희, 순천대학교박물관·한국수자원공사, 2000)
집필자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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