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계 ()

근대사
개념
목돈 마련을 위하여 저축이나 윤번제 급부 형태로 계원들이 조직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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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목돈 마련을 위하여 저축이나 윤번제 급부 형태로 계원들이 조직한 계.
개설

저축계는 저축 등의 형태로 계금을 납입하는 계원들에게는 목돈 마련을, 필요에 따라 그 계금을 대부해가는 쪽에게는 신용[대차(貸借)]의 공급을 목적으로 한다. 저축계라고 할 만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형태가 있다.

(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계원들이 일정 기간 적금 형태로 출자해서 기금을 만들고 그 기금을 계원이나 계원 아닌 사람들에게 대부해주어 식리(殖利)하는 형태. 이것은 소규모 금융기관처럼 운영되었으며, 명칭도 대개 ‘〇〇저축계’, ‘〇〇저축조합’이라고 불렸다.

(나) 계주(契主)를 중심으로 몇 명에서 몇 십 명의 계원들이 일정 기간 매달 얼마씩의 돈이나 곡식을 납입해 목돈을 만들고, 추첨 등을 통해 계원들이 그 목돈을 윤번제로 타 가는 형태. 계원들이 납입한 돈을 모아 일수(日收) 등으로 대부해서 식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납입된 금액만큼 윤번제로 나눠가질 수도 있다.

(다) 명칭은 ‘계’이지만 조직이 일정 기간 지속된다든지 계원의 범위와 자격이 분명하다든지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모은 목돈을 추첨 형태로 소수에게 분배하는 만인계(萬人契), 산통계(算筒契), 자빡계 등이 있다. 이것은 저축계라기보다는 사행성 복권에 가까운 것이지만, (나)의 식리하지 않는 윤번제 목돈 분배의 극단적인 형태로 볼 수도 있다.

연원 및 변천

저축계는 대개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거나 법률상의 단체로 등기·공증되지도 않은 것들이었으므로, 정확하게 언제부터 이런 형태들이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가)형태는, 조선후기까지의 여러 계들도 계원들끼리의 상부상조 못지않게 계 기금으로 계원이나 지역주민에게 ‘장리(長利)’ 등으로 신용대부를 해서 식리활동을 했다. 그러나 계 기금을 매달의 정기적금 형태로 받아서 출자한 계원들 각자에게도 저축이 되게 한다든지 하는 방식은 근대적 은행이나 금융조합, 협동조합 등의 운영방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나)형태 역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전통적 계 가운데 결혼이나 상사(喪事) 등의 불규칙한 목돈 수요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 계원들이 윤번제로 목돈을 마련해서 농우(農牛)를 구입한다든가 하는 규칙적인 급부방식으로 바뀐 것이 아닐까 싶다. 추첨을 통해 급부의 순번을 정한다든가, 급부 순서에 따라 또 자신의 급부 전후로 납부금액이 변동된다든가 하는 것은 일본의 무진(無盡: 상호신용계)의 영향이라고 추측된다. (다)형태는 개항 이래 도시지역에서 크게 유행해서 당시 사회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기능과 역할

은행 등의 금융기관이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 이전에는 서민들의 저축이 쉽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신용대차도 어려웠다. 특히 곡류의 경작주기에 따라 거의 매년 ‘보릿고개’(春窮期)를 겪어야 했던 빈곤층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서 춘대추납(春貸秋納) 방식의 곡물·자금의 대차가 필요했지만, 국가의 환곡제도나 일부 지주·동계(洞契)의 고리대 외에는 따로 금융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개항 이래 식민지기를 거치면서 은행과 금융조합 등이 다수 설립되었고 국가도 저축을 장려했으나 여전히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범위는 도시지역과 중상류층에 한정되었다. 따라서 여러 지역에서 유지(有志)·명망가·자산가 등이 중심이 되어 (가)형태의 저축계를 설립하거나 서민들 스스로 (나)형태의 계를 조직해서, 저축을 통해 목돈을 마련하거나 급한 대출의 수요를 해결하고자 했다.

의의와 평가

(가)형태의 저축계는 식민지기 농촌에서 소규모 금융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으나, 이후 각급 금융기관과 관 주도의 조합 등이 보급되면서 그 지반이 축소되었다. (나)형태는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도 민간의 관행으로 존속하고 있다. 단순한 목돈 마련을 위한 것도 있지만,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관광여행, 심지어는 ‘명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의 계도 있다. 대개는 지인(知人)들의 친분 유지를 위해 계를 모으지만, 때로는 계주에 대한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순전히 금전적인 목적으로 계에 가입하기도 한다. 때로 계주나 선순위로 계금을 탄 사람들이 계를 ‘깨는’ 사건이 벌어져 사회문제화 되기도 한다. (다)형태의 계는 조직 당시부터 정부 당국에 의해 불법화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저축계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 제도적 금융기관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민간의 자발적인 저축과 신용대부의 기구로 역할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사회경제사연구』(김삼수, 박영사, 1974)
「‘계 파동’의 계보」(서호철,『사회와 역사』88집, 한국사회사학회, 2010)
「1920년대의 농촌 저축조합 연구」(홍성찬,『동방학지』137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7)
「1950-60년대 계(契)와 사금융시장」(이명휘,『여성경제연구』2권 1호, 한국여성경제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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