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철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의 항일 비밀결사인 연구회의 조직과 활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가산낙철(佳山洛哲)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1년 11월 22일
사망 연도
2005년 8월 6일
출생지
전라북도 무주
주요 경력
삼광중학교 교장
대표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1963)
내용 요약

최낙철은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연구회의 조직과 활동을 주도하였다. 연구회는 독서 토론과 학문 연구를 통해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실력을 양성하여 조선 독립에 대비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최낙철은 연구회 지리부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의 항일 비밀결사인 연구회의 조직과 활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최낙철(崔洛哲)은 1921년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서 태어났다. 무풍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41년에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주요 활동

최낙철은 1941년 1월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임병찬(林炳讚) · 장세파(張世播) · 안진강(安津江) · 이태길(李泰吉)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연구회(硏究會)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연구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현재의 긴박한 세계정세를 볼 때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독립이 실현될 것이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였다. 이에 학생들은 조선의 독립에 대비하기 위해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학문 분야를 연구하여 실력을 양성하고, 각 방면에서 조선의 최고 권위자가 되어 조선 독립을 위해 협력 매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학생들은 매월 학술 연구를 표방하며 모임을 갖고 동지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하급생 지도 및 동지들을 규합하는 방법에 관해 논의하며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연구회는 산하에 교육부 · 문학부 · 이과부 · 지리부 · 역사부 · 농업부 · 공업부 · 종교부 · 문예부 · 전기과학부 · 물리부 · 정치경제부 · 음악부 등을 두고 각 부서에 책임자를 두어 운영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최낙철은 지리부 책임을 담당하였다. 또한, 연구회에서는 1. 회원은 비밀을 엄수한다. 2. 회원은 매월 1일 각자 분담 부문의 연구 사항을 발표한다. 3. 각 부문의 책임자는 해당 부문의 하급생을 지도 교양하고 동지의 획득에 노력한다는 등의 운동 방침을 정하고 활동하였다.

최낙철은 1941년 4월 조선공립국민학교 주1로 임용되어 함경북도 나진(羅津)의 약초공립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연구회 사업을 이어 나갔다. 최낙철은 우수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수재(秀才) 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학생과 학부형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훈도로 활동하던 정현(鄭鉉)이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수업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일제 경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현의 집에서 학생들의 독서회 모임인 윤독회(輪讀會)에서 발간한 잡지 『반딧불』이 발각되면서 대전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일제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2년 동안 미결 상태로 있다가, 1944년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8 · 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1986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삼광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2005년 8월 6일 숙환으로 사망하였으며,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독립운동사자료집』 13(국가보훈처, 1986)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12권(국사편찬위원회, 1976)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5)

논문

허종, 「일제하 전시체제기 대구지역 학생운동의 전개와 성격– 항일비밀결사를 중심으로」(『대구사학』 110, 대구사학회, 2013)
허종, 「일제강점기 후반 대구사범학교의 학생운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 문화체육관광부, 2006)

판결문

「예심종결결정」(대전지방법원, 1943. 2. 8.)
주석
주1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의 교원(敎員)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집필자
황민호(숭실대학교 사학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