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사 ()

목차
불교
유적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
목차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
내용

신라 때부터 존재했던 사찰인데,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다만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진표전간(眞表傳簡)조에 사찰에 관한 사항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어 참고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효성왕 4년(740) 진표(眞表) 스님이 전국의 명산을 두루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전라북도 부안의 선계산(仙溪山) 부사의암(不思議庵)에 머물면서 14일간의 고행 끝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뵙고 정계(淨戒)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뜻이 미륵보살(彌勒菩薩)에게 있었으므로 다시 변산(邊山, 또는 능가산이라고도 함)의 영산사(靈山寺)로 옮겨가서 용맹정진하였고 마침내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점찰경(占察經)』과 간자(簡子) 189개를 받았다. 이후 진표는 금산사(金山寺)에 머물면서 해마다 점찰법회(占察法會)을 열어 불법을 널리 폈다고 한다. 『점찰경』에서는 말법 시대의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방편으로서 목륜상법(木輪相法: 간자를 던져 점을 치는 법)이라는 점찰 수행을 제시하고 있다. 말세의 중생들은 이 점찰법을 행하면서 숙세(宿世)의 선악업보와 현재의 고락 길흉을 점찰하여 참회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진리에 귀의하고 소원을 이루어, 어리석은 마음과 무명(無明)을 깨치고 청정한 수행(淸淨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신라의 원광(圓光)이 처음으로 이 법회를 열었고, 진표에 의해 한국 불교의 중요한 수행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한편 영산사에 관한 기록은 매우 소략하나 진표가 미륵을 친견하고 『점찰경』을 받은 장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륵신앙 내지 점찰수행과 관련 있는 사찰이 아닐까 추정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불교사찰사전』(이정, 불교시대사, 1996)
집필자
류승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