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용토(自受用土)는 유식학파가 말하는 부처님의 4가지 국토 중 하나로 자수용신(自受用身)이 머무는 곳, 즉 자수용신의 세계를 의미한다.
유식학파에서는 불신(佛身) 즉 부처의 몸을 자성신(自性身, svabhāvakāya, 혹은 법성신法性身. dharmakāya), 수용신(受用身, saṃbhogakāya), 변화신(變化身, nirmāṇakāya)의 3신(三身)으로 이야기한다. 법성신은 진리로서 부처의 몸을 의미하며, 수용신은 깨달음의 경지를 향유하는 부처의 몸, 변화신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중생에게 감응하여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나는 몸이다.
나아가 유식학파에서는 수용신을 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으로 나눈 4신(四身)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각 불신은 그 몸이 머무는 곳 또한 구분되는데, 이 네 가지 불신이 머무는 땅이 법성토(法性土) · 자수용토(自受用土) · 타수용토(他受用土) · 변화토(變化土)이다.
법성토는 자성신(自性身)이 의지하는 곳으로 이토(理土)라고도 한다. 자성신은 불법의 이치와 일치하는 부처의 몸, 즉 법신(法身)으로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몸으로 한다. 그 몸은 모든 곳에 펼쳐진 허공과도 같으므로 법성토는 진여자성의 진리 그 자체가 우주인 부처님의 세계이다.
자수용토는 자수용신이 의지하는 곳이다. 자수용신이란 진실한 지혜를 갖추고 홀로 법락을 누리는 불신이다. 자수용신은 무수한 인행(因行)의 과보로 생긴 불신이므로 보신(報身)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보신이 머무는 자수용토를 실보토(實報土)라 부르기도 한다. 법성토가 진리의 세계라면, 자수용토는 부처님이 그 진리의 세계를 음미하면서 법락(法樂)을 누리는 곳이다. 이 불신은 대원경지(大圓鏡智)와 상응하는 무루(無漏)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전환되어 나타난 경계이다. 지극히 긴 삼아승기겁(三阿僧祇劫)의 시간 동안 헤아릴 수 없는 공덕과 지혜를 쌓아 자기에게 유익한 수행을 닦으면, 맑고 깨끗한 법계에 두루 상주하는 색신(色身)이 생겨나 미묘한 즐거움을 몸소 누릴 수 있게 된다. 자수용토는 부처만의 세계이므로 아무리 급이 높은 보살이라도 이 국토를 알지 못한다.
타수용토는 타수용신이 머무는 곳으로, 부처님이 자신의 깨달음을 이야기함으로써 최상위의 보살들이 법락(法樂)을 누리도록 한 세계이다. 자수용토가 부처님 자신의 기쁨에 머물러 그 기쁨을 음미하는 세계라면, 타수용토는 보살을 기쁘게 하며 최상위의 보살들이 그 이상의 수행을 하도록 만드는 곳이다. 따라서 타수용토는 앞의 법성토나 자수용토와는 달리 크기나 우열의 차이가 있다.
변화토는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변화하여 나타난 세계를 가리킨다. 변화토는 정토(淨土)와 예토 모두에 통하지만, 앞서의 3가지 토는 정토이다.
유식학파의 4토설은 반야경 계통의 불신관(佛身觀)을 정교하게 구분한 3신설에 정토관(淨土觀)을 결합시킨 것이다. 따라서 4토설은 대승불교의 구원론과 수행론의 체계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자수용토는 타수용토와 더불어 다른 세계의 불국토라는 정토의 의미를 열반에 도달한 부처라는 이상적인 수행론과 결합시켰다. 이를 통해 정토는 외부에 존재하는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부처의 깨달음이 드러나는 자체, 즉 유식(唯識)의 소산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아시아 불교의 유심정토(唯心淨土) 또한 이러한 사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