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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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지명
삼국시대 백제의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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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백제의 산성.
개설

독산성은 548년에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산성이다. 고구려가 예(濊: 말갈)의 군사를 동원해 공격했지만 신라군의 지원때문에 성의 공취에 실패하였다. 독산성의 위치는 종래에 충남 예산군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당시 백제·고구려의 교전지역과 '한강 이북(漢北)'에 있었다는 기록을 존중해 재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경기도 양주와 포천지역이 주목을 받고 있다.

내용

『삼국사기』 신라본기·고구려본기·백제본기에는 548년에 같은 사건의 내용을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내용을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548년 봄 정월에 고구려 양원왕(545~559)이 예(濊)의 군사 6천 명을 동원하여 한북(漢北)에 있는 백제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다. 이때 신라의 장군 주령(朱玲, 또는 朱珍)이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구원하여 고구려가 패하여 물러갔다.

독산성의 위치는 기왕에 충남 예산군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 였다. 곧 『일본서기』 권19, 흠명천황(欽明天皇) 9년(548) 4월조에 고구려가 침입한 것으로 나오는 마진성(馬津城)을 백제가 멸망한 후 당이 설치한 현에 “마진현은 본래 고산이다(馬津縣本孤山).”이라고 한 것에서 착안하였다. ‘고산(孤山)’= ‘독산(獨山)’이라는 것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웅주(熊州)에 따르면, 고산현(孤山縣)이 충남 예산군이다.

그러나 당시 백제와 고구려의 주요 교전지역과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신라의 구원군이 파견되기에도 충남 내륙의 예산군은 어울리지 않는다. 독산성의 위치에 대해 '한강 이북(漢北)'에 있었다는 기본적인 전제와도 부합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 독산성의 위치를 분명히 하기는 어렵지만, 고구려의 용병으로써 예(濊)가 동원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는 추가령구조곡을 통해 한강 방면으로 서남진해 백제를 침략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의 침입경로를 고려할 때, 북한강이나 임진강 유역, 곧 경기 동북부나 강원도 철원 지역으로 위치를 비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구복은 『고려사(高麗史)』 열전, 김취려전(金就礪傳)에 나오는 경기도 양주의 독산( 獨山)을 주목하였다. 또한 김병남은 독산성의 위치를 경기도 포천으로 위치 비정하기도 했다. 현 단계에서 독산성의 위치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음운학적 방법보다는 역사지리적 대세를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의미

548년 당시 한강 이북의 독산성이 백제의 영유 하에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 이전에 백제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현재 학계에는 475년~551년 사이 한강 유역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기왕의 통설이 ‘고구려 영유설’이라면, 최근에는 연구자마다 한강 유역 회복시기와 범위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백제 영유설’을 주장하는 연구 성과도 축적되고 있다. 독산성의 위치가 한강 이북이라면 ‘백제 영유설’의 논리가 좀 더 보강되는 셈이다.

한편 433~434년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은 이후 5세기 후반에 이르면 두 나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495년 이후 동맹군의 활동이 없었는데, 이때 이르러 다시 공동으로 군사활동을 한 것이다. 541년에 백제가 신라에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다시 복원한 후 구체화된 첫 결실이었다. 곧 548년 독산성 전투는 ‘나‧제동맹’의 추이와 관련해서도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일본서기(日本書紀)』
『고구려 남방 진출사』(장창은, 경인문화사, 2014)
『백제의 흥망과 전쟁』(문안식, 혜안, 2006)
『가야연맹사』(김태식, 일조각, 1993)
「삼국사기의 원전 자료와 사료비판」(정구복, 『한국고대사연구』 42, 2008)
「5~6세기 백제의 북계」(양기석, 『박물관기요』 20, 단국대, 2005)
집필자
장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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