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연합 (DJP)

정치
개념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호남과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김대중과 충청과 온건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김종필 간에 결성한 선거 정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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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DJP연합은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호남과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김대중과 충청과 온건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김종필 간에 결성한 선거 정치 연합이다. 1997년 김대중과 김종필의 선거 협약은 김대중은 대통령, 김종필은 책임 총리를 맡고, 대통령 임기 2년차에 의원내각제 개헌을 하여 김종필이 내각 수반으로서 국정을 맡는다는 것이었다. DJP연합을 통해 거대 집권당인 민자당의 한축을 형성했던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의 선거연합에 합류하여 한국 최초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하였다.

정의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호남과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김대중과 충청과 온건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김종필 간에 결성한 선거 정치 연합.
DJP연합의 추진 배경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 구도가 민주 대 반민주에서 지역 대결 구도로 바뀌면서 민주화 투사인 김대중이 선거를 통해 집권할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 이는 김대중이 1987년과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한 데서 드러난다. 1992년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 김대중은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으나 인내와 끈기의 인동초(忍冬草) 리더십을 발휘하여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준비하였다. 김대중은 1993년 아시아 태평양 평화재단(약칭 아태재단)을 설립하고, 1995년 지방 선거 직후 정계 복귀를 선언하였다. 정계 복귀 이후 김대중은 민주당(民主黨)을 탈당하고 새정치국민회의(새政治國民會議)를 창당하였다.

그러나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가 집권 민주자유당(民主自由黨)에 79석 대 139석으로 참패하는 선거 결과로 나타나자 김대중은 선거연합이 없이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1995년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에서 탈당해서 자유민주연합(自由民主聯合)을 창당하여 대선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충청 지역의 맹주인 김종필과 선거연합을 시도하였다. 1년여 동안의 DJP연합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고, 1997년 11월 3일 김대중과 김종필 간의 DJP연합이 마무리되었다.

DJP연합의 내용과 선거정치에서의 효과

DJP연합은 기본적으로 선거 정치 연합이다. DJP연합에서 합의된 내용은 주로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 교체를 이루어 내었을 때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첫째,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으로 하고 김종필은 초대 국무총리를 맡는다. 둘째, 1999년 12월 말 이전 16대 국회에서 내각 책임제(內閣責任制) 개헌(改憲)을 한다. 대선 승리 후 구성될 연립 정부에서 경제 부처의 임명권은 국무총리가 가지며, 지방 선거에서 수도권 광역 자치 단체장 중 한 명을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한다.

DJP연합은 정책연합이라기 보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선거연합이다. DJP선거연합은 확실한 효과를 내었다. 1997년 12월 김대중은 4수 끝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김대중은 지지 기반이 약했던 충청도에서 43만표 차이로 앞섰다는 것은 DJP연합이 1997년 대선에서 확실한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DJP연합의 역사적 의의

DJP연합의 역사적 의의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연합이었다. 둘째, 민주 개혁파와 보수 우파의 이념연합이었다. 보수 우파 김종필이 김대중의 이념을 보증함으로써 김대중에 대한 비토 세력(veto勢力)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셋째, 지역 간 연합이었다. DJP연합은 영남 패권에 대한 두 소수파 지역인 호남과 충청 사이의 연합이었고, 호남과 충청 연합은 강고한 지역주의의 벽을 넘고 최초로 비영남지역 출신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참고문헌

단행본

박명림, 임혁백 외, 『김대중의 사상과 정치』 (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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