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학은 20세기 추상 대수학의 발전에 공헌한 함흥 출신 수학자이다.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물리학과 졸업 후 해방 후 서울대학교 수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 1953년 캐나다 브리티쉬컬럼비아대학교 수학과로 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49년부터 세계적 수준의 논문을 발표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1961년 리 군(Ree group)이라는 유한 단순군의 발견을 논문으로 발표, 추상 대수학의 군론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64년 캐나다 왕립학회 정회원에 선출되었고 2006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이임학(李林學)은 1922년 12월 18일 함경남도 함흥(咸興)에서 출생하였고 2005년 1월 9일 캐나다 밴쿠버(Vancouver)에서 사망하였다. 캐나다에서 이명숙(Lee Myung-Sook)과 결혼, 에란(Erran)과 히란(Hiran) 두 딸을 두었고, 그후 로다 마(Rhoda Mah)와 재혼하여 로날드(Ronald), 로버트(Robert), 리차드(Richard) 세 아들이 있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교(京城帝國大學校) 예과 입학 후 수학에 대한 열정을 본격적으로 갖게 되었으나 학창 시절 수학을 거의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경성제국대학교에는 수학과(數學科)가 없었기 때문에 물리학(物理學)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오오츠카 아키로〔大塚明郞〕 교수 연구실에서 물질 구조학을 연구하였고 1944년 물리학과를 제2회로 졸업하였다. 그후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에 기술자로 취직, 만주비행기회사로 파견, 제품 검사하는 일을 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김지정(金志政), 유충호(劉忠鎬)와 함께 경성대학교(前 京城帝國大學校) 수학과 초대 교수로 선출되었으나 1946년 8월 국립 서울대학교 안이 확정되자 사직하고 김일성종합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함흥에는 그의 부모님과 누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 정권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월남하여, 서울에서 휘문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일하다가 서울대학교 수학과 교수 최윤식(崔允植)의 초빙으로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서 대수학을 가르쳤다.
그랜빌(William A. Granville)의 책을 번역하여 1948년 『미분학』, 1949년 『적분학』을 청구문화사에서 출간하였다. 이 책들은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최초의 고등 수학 교재가 되었다. 미국공보원에서 『Mathematical Reviews』에 실린 스테판 제닝스(Stephen A. Jennings)의 논문을 읽고 그에게 편지를 썼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제닝스 교수가 있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로 박사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1953년 같은 대학교 수학과 박사 과정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1955년 제닝스 교수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해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자, 미국 입국을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한국영사관에 여권 갱신을 신청하였으나 영사관 측은 그가 학위를 마치고 당연히 귀국할 것으로 여기고 그의 여권을 없애 버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가 이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귀국을 거부, 무국적자의 삶을 택했다. 캐나다 정부는 그에게 영주권과 시민권을 주었다. 1961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1987년 그곳에서 은퇴하였다. 2004년 같은 대학 수학과 명예 교수가 되었다. 2018년 아벨상을 수상한 로버트 랭글랜즈(Robert P. Langlands)가 학부 시절에 이임학의 지도를 받았다.
1949년 「On a problem of Max A. Zorn」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1947년 남대문 시장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Bulletin of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에서 막스 아우구스트 초른(Max August Zorn)의 논문을 읽고 미완의 문제를 풀었다. 자신의 해답을 초른에게 보냈고, 초른이 이를 대신 투고해 주어 논문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 논문은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 살로먼 보크너(Salomon Bochner) 교수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1959년과 1960년 유한 단순군(有限單純群)의 두 수열을 발견하여, 1961년에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당시 미군해군연구소(the Office of the Naval Research)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수학자 자크 티츠(Jacques Tits)와 교류하면서 두 논문을 작성하였고, 이 논문들을 통해서 추상 군론(抽象群論)의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가 발견한 유한 단순군은 ‘리 군(Ree group)’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이 발견을 통해서 추상 대수학(抽象代數學) 군론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평생 에밀 아틴(Emil Artin)의 추측을 풀고자 하였으나 실패했다고 스스로 평가하였다.
1964년 캐나다 왕립학회 정회원에 선출되었고, 2006년에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17년에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32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