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신법역서는 명나라 말기에 편찬된 『숭정역서』를 청나라 초기에 탕약망이 재편하고 몇 가지 서종을 추가하여 첫 번째 시헌력법서로 삼은 천문학 총서이다. 왕조가 바뀌어 불가피하게 명칭을 바꾸었지만, 『숭정역서』 각판(刻板)을 그대로 사용하여 보각한 증보본이다. 강희역옥 후에는 명칭에서 ‘서양’을 빼고 약간의 내용 변동이 있었고, 이때도 기존의 각판을 그대로 쓰고 보각하였다. 역법서로서 기능이 다한 후인 건륭제 때 서법 도입 과정의 보존을 위해 역서를 재정리하고 ‘曆’을 ‘算’으로 피휘하여 『사고전서』에 수록한 것이 『신법산서』이다.
청나라 초기에 탕약망(湯若望, 15911666)[서양명: 아담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이 명나라 말기의 『숭정역서』에 애유략(艾儒略, 15821649)[서양명: 알레니(Giulio Aleni)]의 『기하요법(幾何要法)』 등을 추가하여 『서양신법역서(西洋新法曆書)』로 재편하였다. 1673년(현종 14)에 남회인(南懷仁, 1623~1688)[서양명: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이 주로 강희역옥(康熙曆獄) 관련 서종을 추가하여 『신법역서(新法曆書)』로 다시 재편하였다.
청나라 초기의 보각본(補刻本) 『서양신법역서』는 북경 고궁박물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매엽 9행 12자이고, 본디 103권이며, 내제(內題)와 권수제(卷首題)가 모두 ‘서양신법역서’이다. 명나라 말기의 보각본 『숭정역서』의 각판을 그대로 활용하여 다시 보각하였다. 『숭정역서』 권수면(卷首面)의 서광계(徐光啟, 15621633) 또는 이천경(李天經, 15791659)의 직함 앞에 쓰인 ‘흠차(欽差)’ 또는 ‘흠명(欽命)’을 ‘명(明)’으로 바꾸고, ‘서양 예수회 선교사 아무개’ 앞에 ‘수정역법(修政曆法)’이라는 직함을 덧붙였다. 편찬 조력자들에 대한 직함과 역할의 구분을 삭제하고 대신에 ‘문인(門人)’과 ‘수법(受法)’으로 일괄 기재하였다.
『신법역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에 소장(奎中3419. 82책본)되어 있다. 매엽 9행 12자이고, 본디 100권이며, 청나라 초기 『서양신법역서』의 각판을 그대로 활용하여 다시 보각하였다. 강희역옥의 여파로 제목에서 ‘서양’을 빼어 내제를 ‘신법역서’로 새로 새겼다. 권수면의 제목과 편찬자 명단 등은 청나라 초기의 『서양신법역서』 그대로이다.
『신법산서(新法算書)』는 『사고전서(四庫全書)』 제788책, 제799책에 자부(子部) 천문산법류(天文算法類) 추보지속(推步之屬)의 책으로 수록되었다. 매엽 9행 11자의 필사본(筆寫本)이다. 권두(卷頭)에 1781년 (건륭(乾隆) 46)에 『사고전서』 편수관이 쓴 「신법산서 제요(題要)」가 있고, 편찬자 명단을 ‘명 서광계 등 찬(明徐光啟等撰)’으로 요약하고 말았다. 이전의 간본들은 본디 서종별 권차만 있었는데, 『신법산서』는 「연기1(緣起一)」을 제1권으로, 「신법표이 권하(新法表異卷下)」를 제100권으로 삼아 전체적인 권차를 매겼다.
『서양신법역서』에는 “『서양신법역서』 100권-13함-을 진상함. 순치 2년(1645) 11월 19일에 진상하여 12월 21일에 칙지를 받음.[進西洋新法曆書壹百卷-拾參套- 順治二年十一月十九日上 十二月二十一日奉聖旨]”이라는 기록이 있다. 탕약망은 이 진상본에 자신이 저술한 『역법서전(曆法西傳)』, 『신법표이(新法表異)』를 더해 103권으로 증보(增補)하였다. 이렇게 하여 『서양신법역서』가 완성되었다.
강희역옥을 이겨낸 남회인이 흠천감감정(欽天監監正)이 된 후인 1673년에 강희역옥 관련 내용을 추가하고 다시 100권으로 재편하여 『신법역서』로 개칭하였다.
이후에 두 번째 시헌력법서(時憲曆法書)인 『역상고성(曆象考成)』(1722년)과 세 번째 시헌력법서인 『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編)』(1742년)이 차례로 편찬되면서 이 책은 역법서로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렇지만 『사고전서』 편찬관들은 1781년(정조 5)에 ‘청나라 초기의 개력(改曆)이 이 책에 기반했으므로 중국에서 서법(西法)이 시작된 과정을 논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보존한다.’라는 의미로 『사고전서』에 수록하면서 『신법산서』로 개칭하였다.
『숭정역서』에 비해 『서양신법역서』에는 시헌력(時憲曆)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신력효혹(新曆曉或)』, 망원경의 원리와 관측 결과를 소개한 『원경설(遠鏡說)』, 청나라 초기의 시헌력 시행과 관련한 문서들을 실은 『주소(奏疏)』, 기하학과 관측법에 대한 『기하요법(幾何要法)』, 『측식(測食)』 등 10종이 추가되었다. 달력 계산의 원리와 계산법 등 주요한 부분은 『숭정역서』와 다름이 없다.
『신법역서』에 추가된 내용은 시헌력이 처음 시행되던 1644년(인조 22)~1660년(현종 1) 및 강희역옥의 판결이 뒤집히던 1668년(현종 9), 1669년(현종 10)의 시헌력 관련 문서 모음과 『부득이변』이다.
『신법산서』는 탕약망이 추가한 『주소』, 『신력효혹』, 남회인이 추가한 내용들을 제외하여, 시헌력 시행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기록을 청나라 이전으로 한정하였다.
『서양신법역서』는 명나라 말기에 편찬을 완료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한 『숭정역서』의 역법 체계가 공식 역법으로 채용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