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 安東). 본명은 권상중(權尙中), 아명은 권석출(權石出). 자는 윤집(閏集). 경상북도 청송 출신. 아버지는 권복규(權福奎),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체결로 인하여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이 자행되자 의병장 김소라의 의병부대에 들어 항일 의병운동에 투신하였다.
1906년 경상북도 영천군 신촌면 정각동의 전투에서 의병장이 전사한 후 새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정미칠조약 체결 후 군대해산이 강행되자 의병활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그는 의병부대를 보다 강화시킬 필요를 느끼고 고향인 청송일대를 중심으로 모병 및 군자금 모금활동에 주력하였다.
1908년 의병장 임용상(林龍相)의진과 합류, 동지 서주일(徐柱日) 등 수십명을 이끌고 군자금 모금을 위한 활동을 폈다. 그해 청송군 현서면 감음(甘陰)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1909년 11월 25일 임용상·송남면(宋南面)과 함께 청송군 현남면 약곡동에 출동하여 윤덕동(尹德洞)집에 들어가 그의 왼쪽 사타구니에 자상을 입히고 약간의 군자금을 탈취하였다.
그뒤 청송군 안덕면 일대에서 적과 접전 중 붙잡혔으나 수비병 2명을 죽이고 도피, 은신하였다. 그러나 1910년 붙잡혀 7월 25일 대구지방재판소 형사부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고, 그에 불복하여 대구공소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1913년 1월 14일 칙령 제23호에 의하여 징역 5년으로 감형되어 나머지 옥고를 치른 뒤 1915년 출옥하였다. 그뒤 병고에 시달리다 청송에서 사망했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