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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서(金光瑞)

근대사인물

 일제강점기 전의회 회장, 신흥무관학교 교관, 조선빨치산부대 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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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전의회 회장, 신흥무관학교 교관, 조선빨치산부대 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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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시흥(始興). 아명은 김현충(金顯忠), 별명은 경천(擎天). 서울 출신.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포병 부령(副領)이며, 군기창장(軍器廠長)을 역임한 김정우(金鼎禹)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1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23기 졸업생으로 동경 제1사단 기병 제1연대에 근무하였다. 그리고 1916년 동경에 근무하는 한국인 장교들의 모임인 전의회(全誼會) 회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1919년 재일 동경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하자 즉시 병가를 얻어 귀국하였다.
그런데 이때 마침 일본군 장교로 복무 중이던 지석규(池錫奎)·이응준(李應俊)도 귀국 중이었기 때문에 서로 밀접한 접촉을 하여, 일본군을 탈출한 뒤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에 결의하였다.
그해 6월 지석규와 같이 신의주를 경유해 만주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설립되어 있던 항일 독립군 장교 양성 기관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교관으로 취임해 독립군 훈련에 힘썼다.
당시 신흥무관학교에는 정규 군사교육을 받은 장교 3인이 교관으로 있었는데, 이 세 사람을 삼천(三天)이라 하였다. 즉 신팔균(申八均)은 동천(東天), 김광서는 경천, 지석규는 청천(靑天)이라는 별호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1920년 김광서는 독립군을 무장시킬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노령 연해주에 도착하였다. 마침 일본군에 의해 이항사변(尼港事變)이 발생하였고, 이때 일본군이 무고한 한국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을 보고 분격하였다.
그리하여 노령에 재류하는 한국인 청년들을 규합해 항일 무장 부대를 편성하였다. 이 부대는 6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적군(赤軍)과 연합해 일본군 및 그들의 후원 하에 활동하는 백계 러시아군을 상대로 항전하였다.
1922년 여름 혁명군사회의 결정에 따라 뽀시에뜨(지금의 하산) 군사 구역 조선 빨치산 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해 일본군이 시베리아를 철수한 뒤 적군이 배신해 한국 독립군의 무장 해제를 단행하자 이에 항거하였다. 그리고 1923년 중국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 참석하였으나 회의 진행 경과를 보고 실망해 다시 연해주로 돌아왔다.
그 뒤 구로지코 부근에 무관 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 사관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 때 교재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사용하던 것을 번역해 사용하였다. 1930년대 전반기까지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에서 한족군인구락부(韓族軍人俱樂部)를 조직해 흩어진 항일 역량을 재규합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연해주 군관구 산하의 군사전문가로 영관급 장교 대우를 받으며 봉사하였다.
1933년부터 1936년까지 적군에 의해 투옥되었으며, 1937년 석방된 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Kazakhstan)으로 강제 이주되어, 현지 집단농장의 작업 반장이라는 말단 직위로 노동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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