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기(汝器), 호는 만취(晩翠). 남원 출신. 할아버지는 김귀손(金龜孫)이며, 아버지는 김사걸(金士傑)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이이(李珥)와 교유하였다.
1558년(명종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71년(선조 4) 담양부사가 되었으며, 그 뒤 내외의 여러 관직을 거쳐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과 형조참의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든 몸으로 어가를 호종하였다. 말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독서로 여생을 보냈으며, 뒤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