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동명(東溟). 서울 출생. 서울교동보통학교를 거쳐 양정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진학하였다. 재학중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신극운동단체인 토월회(土月會)에 관계한 일도 있었는데, 1923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이 일어나자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1924년 10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사회부 기자로 활약하다가, 1930년 9월매일신보사(每日申報社)로 옮겨 1937년까지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총독부·철도국 등을 담당하였다. 1933년 만주의 신경(新京: 지금의 長春)에서 창간된 『만몽일보(滿蒙日報)』의 창립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1939년 4월동경(東京)에서 조선문화사(朝鮮文化社)를 창설하고 『조선화보』를 발행하였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조선문화사를 국제문화협회로 개편하여 김구(金九)의 『도왜실기(屠倭實記)』 등을 발행하였다. 1950년 4월 서울신문 동경특파원을 지내다가 1957년 3월부터 서울신문사 본사로 돌아와 이사로 재임하였다.
1961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재일한국신문(在日韓國新聞)』의 주필 겸 편집국장을 맡았으며, 1964년 동경에서 한국문화사를 창립하여 사장이 되었다. 언론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언론인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저서와 이상재(李商在)·윤치호(尹致昊) 등 근대 인물들의 전기를 여러 권 남겼다.
저서로 『사건과 기자』(1960)·『그리운 사람들』(1961)·『신문야화』(1971)·『인간 이은』(1971)·『한국신문사화』(1975)·『월남선생일화집』(1976)·『천리구 김동성』(1981)·『인생잡기』(198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