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유(景裕). 아버지는 호조참의 김헌윤(金憲胤)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로 동지중추부사 이안세(李安世)의 딸이다.
중종의 딸 혜순옹주(惠順翁主)와 결혼하여 1522년(중종 17) 광천위(光川尉)에 봉해졌다.
1527년(중종 22) 기묘사화 때 피해자인 사림파의 김안로(金安老)가 기묘사화의 주동자였던 심정(沈貞) 등을 제거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이며 중종의 맏사위인 김희(金禧)를 사주하여 이른바 작서(灼鼠)의 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처음 누구의 처사인지 모르다가, 결국 무격을 좋아하였던 김인경의 장모 혜빈 박씨(惠嬪朴氏)가 용의자로 지목을 받아 아들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와 함께 서인이 되어 쫓겨났다.
이때 김인경도 연좌되어 상주로 장배(杖配)되었고, 1533년(중종 28)에는 부인 혜순옹주마저 서인으로 폐출되어 경상도 상주로 유배되었다. 같은 해 앞과 똑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 경빈 박씨가 사사(賜死)된 뒤 서인으로 폐출된 부인과 함께 서천으로 이배되었다가 이듬해에 공주로 양이(量移)되었다.
그 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횡포가 아주 심하였던 김안로가 중종비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사사된 뒤 혐의가 풀려 1537년(중종 32)에 관작이 복구되었다. 그 뒤 원종공신에 봉해졌고, 종실과 부마들만이 모여 벌인 백일장에서 장원, 통헌대부(通憲大夫)에 가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