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어(景魚). 김결(金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승석(金承碩)이고, 아버지는 김흠(金欽)이며, 어머니는 전순필(全舜弼)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5년(선조 1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선조 때 성균관학록(成均館學錄)으로 있다가 그만두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에게 팽살(烹殺)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하여 아버지의 상중에 종군(從軍)하였다. 하지만 적군 토벌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상중의 선비가 고기와 술을 마음대로 먹고 마셔 양반의 체통을 잃었다고 하여 직첩(職牒: 관원의 임명사령증)이 환수되었다.
광해군 때는 다시 늙은 어머니를 학대하였다 하여 돌려받았던 직첩을 다시 환수당하였다. 1612년 아들 김백함(金白緘)이 왕을 제거하고 진릉군(晉陵君) 이태경(李泰慶)을 추대하려는 역모에 연루되어 능지처사되고 가산이 적몰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김직재의 옥으로 이어지는 대·소북파 사이의 정쟁(政爭)에 당시 불평객이었던 이들 부자가 희생된 무옥(誣獄: 무고로 일어난 옥사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