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유천(柳泉). 충청남도 아산에서 상업을 하던 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질을 보여 15세에 서울의 조선미술원 연구생이 되었다가, 김은호(金殷鎬)의 화숙(畫塾)에서 수학하였다. 스승의 근대적인 채색화기법을 따른 인물화로써 1940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鮮展)에 거듭 입선하여 화단에 진출하였다.
1941년 일본 동경에 건너가 데이코쿠미술학교 일본화과에 입학, 새로이 전문교육을 받은 다음 1943년 중퇴했다. 1960년까지는 천안 등지에서 중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지내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참가하였다. 그뒤 서울로 올라와 정착하여 중견 한국화가단체인 백양회(白陽會) 동인전에 가담하는 한편, 국전 추천작가·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죽을 때까지 수도여자사범대학(지금의 세종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초기작품에는 일본화의 영향이 많았으나, 1960년 무렵부터는 한촌(寒村)의 초라한 초가집 풍정과 시골의 가난한 생활분위기만을 일관하여, 독특한 수묵필치와 채색기법으로 향토적인 정감을 짙게 표출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해와 초가」(호암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