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건물. 공식명칭은 약천선생별묘이며 2001년 경기도 용인시 향토유적로 지정되었다. 남구만(南九萬)을 배향한 사당이다. 이 사당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며 문인·시인이었던 남구만이 생시에 잠시 우거하였다고 전하여지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비파담(琵琶潭)’이라고 하였다. 1711년(숙종 37) 남구만이 82세로 죽자 처음에는 양주 불암산 화접동 좌향이 정좌(丁坐)인 언덕에 장사하였다가 뒤에 지금의 묘소로 이장한 뒤 묘하에 사당을 짓고 봉사(奉祀)하였다. 전면에 퇴를 달고, 지붕은 한식 골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이며, 겹처마에 단청이 있다.
둘레에는 토석단(土石壇)을 두르고 전면에 일각문(一脚門: 기둥 두 개로만 세우고 문을 단 대문)을 세웠다. 사당 전면의 창호는 유리 영창으로 개조하였다. 사당내에는 영의정 재직시 모사한 것으로 보이는 녹포단령(綠袍團領: 깃을 둥글게 만든 푸른색의 공복)의 영정 1점을 비롯하여, 유복(儒服)차림의 전신교의(全身交椅) 좌상과 반신초상 등이 궤장(櫃藏)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