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중옥(仲玉), 호는 농환재(弄丸齋). 조선조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11세손이다.
일찍부터 저술에 전념하였으며 또한 예학저술에 힘쓰는 한편, 우집경(禹執卿)에게서 탄금법을 배우고, 안진경(顔眞卿)·유종원(柳宗元)의 서법을 공부하였다.
또한 시조와 가사를 짓고 자연을 완상하며 담담한 한거생활을 하였다. 국문작품으로는 『농환재가사집』에 실린 가사 「낙은별곡(樂隱別曲)」과 단가 3수가 전한다.
이 3수의 시조는 『제세당필사본(濟世堂筆寫本)』에는 이본으로 처리되어 5장가곡조의 형식으로 원문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나이 24세에 금강산에 가보고 지은 「봉래가(蓬萊歌)」가 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