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 선조~광해군 연간의 침의(鍼醫).
이칭
사수(士秀)
고산(孤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8년(명종 3)
사망 연도
1616년(광해군 8)
본관
의령(宜寧)
주요 관직
양성현감|음죽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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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남영은 1601년(선조 34)에 침의로 인정받아 등용되었고, 선조 말년부터 광해군대 중반까지 침의로서 국왕의 질병을 여러 차례 치료하였다. 그 공로로 장흥고 직장, 양성현감, 음죽현감에 제수되었다. 둘째 아들 남창조도 침의로 인조 말년부터 현종대까지 어전에서 활약하였다.

키워드
정의
조선 후기 선조~광해군 연간의 침의(鍼醫).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사수(士秀), 호는 고산(孤山)이다. 1548년(명종 3)에 태어났다. 조선 개국공신 남은(南誾)의 5세손이다. 남은이 1차 왕자의 난에 희생되어 가계가 주춤하였다가 증조할아버지 남희(南暿)가 훈련도정(訓鍊都正), 할아버지 남숙(南俶)이 군수를 지내 다시 활로를 찾았다.

아버지 남예석(南禮錫)은 좌윤(左尹)에 증직되었다. 부인 파평윤씨는 첨정(僉正) 윤순(尹淳)의 딸이다. 둘째 아들 남창조(南昌祖)도 아버지를 이어서 인조 말년부터 현종대까지 침의(鍼醫)로 활약하였다.

주요 활동

현재까지 알려진 『잡과단회방목(雜科單回榜目)』에서 남영의 의과 입격 사실이 나오지 않아서, 의술에 정통하여 천거 또는 취재(取才)로 침의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1601년(선조 34) 유학(幼學)으로 침의로 발탁되었고, 남영이 혈을 잡고 허임(許任)이 침을 들어 효험이 있었다고 하며, 이로 인해 두 사람 모두 한 자급(資級)이 더해졌다. 선조대까지 어의로 활약하여 자품(資稟)이 더해지고 장흥고(長興庫) 직장, 양성(陽城)현감에 제수되었다. 1607년 1월에 양지현감 박채(朴綵)와 더불어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 일행이 관내를 통과할 때 전별(餞別)하였다.

광해군 연간에도 침의로서 허임, 전 현감 김영국(金榮國), 전 사과(司果) 김징(金澂) 등과 기용되었다. 군직(軍職)을 받은 남영은 이어서 특지(特旨)로 경기도 내 음죽(陰竹)현감에 제수되었다. 1616년(광해군 8) 사망하였이다. 둘째 아들 남창조(南昌祖)도 아버지를 이어서 인조 말년부터 현종대까지 침의로 어전에서 활약하였고, 그 공로로 청양현감, 과천현감에 제수되었다.

상훈과 추모

1700년(숙종 26)에 세워진 경상도 함창의 청암사(淸巖祠)에 효자로서 남영의 위패가 모셔졌다. 남영은 1604년(선조 37) 장흥고 직장으로 있을 때에 어머니를 위해 귀성하려고 공무 차임의 소장을 냈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의령남씨족보(宜寧南氏族譜)』(1693년 계유본,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단행본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10(변주승 역주, 흐름출판사, 2009)
의령남씨대종친회 편, 『의령남씨족보』(가승미디어, 2006)
김호,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일지사, 2000)
김두종, 『韓國醫學史 全』(탐구당, 1966)
민족문화추진회 편, 「해사록(海槎錄)」(『국역해행총재』 Ⅱ, 민족문화문고간행회, 1974)

논문

이규근, 「조선시대 의료기구와 의관」(『동방학지』 104,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99)
이규근, 「조선후기 내의원 의관 연구」(『조선시대사학보』 3, 조선시대사학회, 1997)

인터넷 자료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
한국사데이타베이스(https://db.history.go.kr)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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