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가사로 보기도 하나 그 성격을 규정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이본이 여럿 있는데, 시집 못간 미모의 노처녀가 토로하는 신세한탄을 내용으로 하는 계열과, 추녀이며 갖은 병신인 노처녀가 결국 시집을 가게 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열의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편의상, 앞의 계열을 노처녀가(1), 뒤의 계열을 노처녀가(2)라고 부른다.
노처녀가(1)은 내방가사(內房歌辭)의 분포지인 안동 · 청송 · 상주 · 경주 등지에 필사본으로 전하며,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에서도 발견되었다. 한인석(韓仁錫)이 엮은 『조선신구잡가(朝鮮新舊雜歌)』에도 수록된 것으로 보아 다른 지역에도 널리 전파되었을 듯하다. 이 계열에 속한 이본들은 내용과 형식에 큰 차이가 없으며, 4음보를 1행으로 헤아려 총 63행이다.
집안의 경제적인 곤궁과 양반가(兩班家)의 체면이 빚어낸 갈등 때문에 혼인의 기회를 놓쳐버린 노처녀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노처녀가 겪는 슬픔과 한스러움을 자탄의 어법으로 토로하고 있다.
작품의 화자는 나이 사십이 넘은 노처녀인데, 밤마다 적막한 빈 방에서 잠 못 이루며, 자신을 출가시키지 않는 부모를 원망한다. 낮이면 행여 중매라도 들어올까 기다리는 마음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또한 자신의 신랑감을 이리저리 꼽아보면서 출가한 뒤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기도 한다. 노처녀로서 시집가고픈 심리와 양반가(兩班家)이기에 아무 데나 시집갈 수 없는 처지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해학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양반층의 몰락상을 생생히 반영한다. 화자는 자신이 노처녀가 된 신세를 체념하거나 순응하려 들지 않고, 그것이 양반층(부모)의 무능과 체면 때문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통렬히 공격하고 적극적으로 항변한다. ‘답답한 우리 부모 가난한 좀양반이/양반인체 된체하고 처사가 불민하야/괴망을 일삼으니 과년한 딸 늙어간다.’등의 표현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봉건왕조 사회의 신분적 질곡에 대하여 날카롭게 항의하면서도 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노처녀가(2)는 국문 고소설집인 『삼설기(三說記)』 권3에 실려있다. 가사형식을 취했으나 작품의 앞뒤에 편집자의 목소리를 내는 이질적 서술자가 개입하고,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의 면모를 갖추어 소설의 경향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노처녀가(1)의 경우와는 달리 화자인 노처녀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다. 화자는 나이가 오십이 다 되었으며, 갖은 병신인 추녀(醜女)로 설정되어 있다. 얼굴이 얽고, 귀가 먹고, 눈은 애꾸요, 왼손과 왼쪽 다리는 불구인데 밤낮으로 슬픈 노래를 읊조리다가, 하루는 건넛집에 사는 김도령과 혼인하여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개 짖는 소리에 놀라 깬 노처녀는 자신의 가엾은 처지를 한탄하며 홍두깨에다 갓과 옷을 입혀 모의 결혼식을 올리는 등, 파행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김도령 집에서 혼인 제의가 들어오고 결혼해서 기쁨을 누리니 그 동안의 시름은 간 데 없고, 허물을 벗어 흉한 몰골을 모두 벗어 버렸다. 그 뒤 쌍둥이 옥동자를 낳아 자손이 번창하고 가산이 풍족한 가운데 부귀공명을 오래도록 누렸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불구자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주인공은 불구의 상황을 그대로 용인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며 끈질긴 노력 끝에 노처녀 신세를 면하게 된다. 이로써 육체적 불구와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노처녀가(2)는 이처럼 이야기 구조를 지니면서 서사적 반전(反轉)을 보이고 있어 한층 서사성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 『삼설기』의 편자에 의하여 이 작품이 소설처럼 취급되고 있는 점 또한 주목된다. 다른 가사 작품에 비해 노처녀가(2)가 이야기의 흥미성과 구성력이 높다는 점에서 소설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작품의 이러한 성격은 조선 후기에 서사적 경향을 보이는 가사 작품들이 점차 증가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가사가 소설과 마찬가지로 읽을 거리를 원하는 수용자층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독서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조선 전기에는 사대부계층이 자신들의 이념과 세계관을 서술하는데 가사장르를 용이하게 활용했다고 볼 때, 후기 가사의 이러한 성격 변모는 가사장르의 성격이 후기에 오면서 오히려 사대부 이념을 극복하려 했던 소설 장르와 동반적인 장르로 전환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노처녀가」(1), (2) 모두 신분의 질곡과 봉건 사회의 모순에 날카롭게 항의하면서도 그것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는 점은 이 작품이 가사라는 장르의 관습에 강하게 얽매어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