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2월 24일까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이었으나, 2002년 12월 7일 보물로 승격되었다.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입적 후 그 의발을 모셨던 곳이기도 해서 조선 후기 선승들의 학맥이 이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서산대사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특명으로 팔도도총섭(八道都總攝)이 되어 제자인 유정(惟政), 처영(處英) 등과 함께 승병을 모집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가 입적하면서 그의 의발이 대흥사에 보관되었는데, 그 유품이 바로 서산대사 유물이다. 이 중 서산대사를 도총섭으로 임명하는 교지 1매와 정조가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을 친히 적은 「서산대사화상당명」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산대사가 입적한 후 180년이 지난 1788년(정조 12) 대흥사에는 서산대사와 유정, 처영을 모시는 표충사가 건립되었다. 1794년 정조는 표충사에 대사의 영정이 봉안될 때 친필로 화상명과 서문을 적어 내려 보냈다. 이것이 화운문 채색화가 그려진 종이에 쓴 「서산대사화상당명[正宗大王宸章]」이다.
교지는 임진왜란 때 발급되었지만 화재로 소실된 이후 1602년(선조 35) 재발급된 것으로, 서산대사를 ‘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一都大禪師 禪敎都總攝)’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