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조합운동과 주식회사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정성자(鄭惺子)·이영규(李泳奎)·문인순(文仁順)·박용일(朴溶日)·박영남(朴英男) 등 11명이 발기하고, 그 해 5월에 발기총회를 하였다.
남자 찬조원인 고윤묵(高允默)·한상룡(韓相龍)·석주형(石鑄衡)·윤치호(尹致昊)·이재극(李載克)·김성수(金性洙)·장덕수(張德秀)·장두현(張斗鉉)·김필수(金弼秀)·심명섭(沈明燮) 등 100여 명이 상무원(常務員)·이사 등 역원(役員)에 임명되었다.
1921년 3월 30일 제1기 정기총회에서 심경섭(沈卿燮)을 이사장으로 선출하였다. 이 상회는 부인들의 각종 일용품, 일반가정의 필용품·서적·학용품 등 소비재상품을 판매하고, 재봉업을 겸영(兼營)하였다. 설립 당시 자본금 40만원을 1주당 20원씩으로 조합원을 공모하였다.
이익금은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차대조표·재산목록·손익계산서 등을 승인받은 뒤 조합원에게 배분하였는데 제1기 총회 때의 배당률은 연 1할이었고, 제2기 총회에서는 1할2푼으로 증액(총이익금 4,188원)되었다. 이익금 배당 중 일부는 자선사업 등에 쓰이기도 하였다.
1925년에 경영난으로 해산되었으며, 상호는 덕원상점을 경영하던 최남에게 인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