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산성은 무등산의 지맥이 북쪽으로 뻗어내린 장원봉(壯元峰, 해발 386m)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상태봉(狀台峰, 해발 350m)과 제4수원지 안쪽 계곡에 남북장축 약 1㎞, 동서장축 약 500m의 장타원형으로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성) 성이다. 성둘레는 3,500m이다.
잣고개 정상에 있는 서문은 광주시내에서 무등산으로 가는 도로의 통과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으며, 잣고개와 석곡수원지 중간쯤에 위치한 동문도 일부 훼손되었다. 남문과 서문지 주변에는 건물지가 있는데, 건물지는 성을 따라 능선상에 배치되어 모두 17개소에서 확인되었다.
성벽의 축성은 능선의 진행 방향을 따라 편축(片築)하는 방법으로, 능선의 7∼9부 지점을 L자 형태로 다듬고 기점부에 5단 정도의 석축을 1m 내외 높이로 쌓은 후 석축과 능선경사면 사이의 공간에 잡석을 채워 다진 것이다.
이러한 축성법은 기저부에 5단 정도 석축을 한 점에서 백제의 축성법과 동일하지만 성벽 상부를 잡석채움식으로 쌓아 흙을 판축한 백제와는 다른 방법이다. 성벽 전체를 정연하게 쌓은 고구려나 신라와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어 백제 축성법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백제식 축성법을 보여준다.
동문지에서 초축과 수축 성벽이 확인되었는데, 초축은 자연적인 계곡의 암반층 위에 장방형으로 잘 다듬어진 석재를 정연한 수평면을 유지하면서 쌓았다. 수축 때에는 암반층 위의 퇴적토층에 부정형의 자연 합석을 허튼층막쌓기로 쌓아 초축과는 구분된다.
건물지와 동문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官(관)·城(성)·國城(국성)’ 등의 명문이 있는 기와편과 서조문(瑞鳥文)·귀면문(鬼面文)·일휘문(日暉文)이 돋을새김된 막새기와, 순청자와 상감청자 등의 자기류 등이다.
이 유물들로 보아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축조되었다가 9세기 중반에 폐성이 되었고, 다시 9세기 후반경에 수축되어 고려 초(12세기)까지 사용된 성지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무진도독 때의 고성이 현(縣) 북5리에 2,560보 또는 32,448척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 성이 무진도독고성으로 비정되기도 하였다.
이 성의 성격을 밝히기 위하여 1988년과 1989년 두 차례 발굴조사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조사에서 무진도독성지라는 결정적인 자료가 없어 이와 관련된 유사시에 대비한 배후 산성일 가능성이 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