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성 ()

회화
인물
해방 이후 「회고」 · 「정물」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8년 1월 19일
사망 연도
1996년 2월 20일
본관
밀양(密陽)
출생지
충청남도 태안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회고」 · 「정물」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충청남도 태안(泰安)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중퇴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60년 중엽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서 옛 도자기․역사유물․민속품 등을 소재로 삼은 수채화와 유화가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면서 화단에 진출하였다. 1974년 제23회 국전에서는 역시 옛날의 기물(器物)을 그린 사실적인 유화 「회고(懷古)」로 대통령상을 차지하였고, 1975∼76년에도 역사적 향기의 고물(古物) 정물화가 특선에 오름으로써 추천작가가 됨으로써 작가적 위상을 굳혔다.

국전에서 성공적 각광을 얻었고 더불어 1969년에는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경향의 서양화가단체인 ‘구상전(具象展)’ 창립에 가담하였으며 1974년과 1975년에는 ‘한국신미술협회’와 ‘한국수채화협회’ 창립에 동참하는 등 적극적인 화단 활동을 보였다.

특히 1970∼1987년에는 수채화협회 회장을 장기 연임하며 수채화의 발전적 활기를 도모하였다.

작품 성향에서는 투명한 색상의 감미로운 표현과 선명한 사실적 기법미의 수채화가 한결 두드러졌고, 유화에서는 강한 원색대비의 색채구사로 정물의 표정과 존재감을 강조하는 특질을 나타냈다.

1975년∼1980년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장, 1980년∼1993년 인하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를 역임했다.

상훈과 추모

1966년 경기도문화상(미술부문)과 1974년 제23회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박영성수채화선집』(도서출판 갑을, 1987)
『박영성작품전』(신세계미술관, 1982)
『국전도록』(15∼30회)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