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거경(巨卿). 할아버지는 박미생(朴美生)이고, 아버지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박사란(朴思爛)이며, 어머니는 군사(郡事) 유한(柳閑)의 딸이다.
1470년(성종 1)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檢閱)이 되고, 경연전경(經筵典經)·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를 겸하면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수찬관(修撰官)으로 『세종실록(世宗實錄)』·『예종실록(睿宗實錄)』을 편찬하였다.
그 뒤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승문원검교(承文院檢校)를 거쳐 병조·형조의 좌랑으로부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및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을 지냈다. 1489년 왕이 장차 중용할 목적으로 남양부사로 보냈을 때는 선정으로 백성을 자식과 같이 사랑하며 권농과 학교를 일으킴으로써 남양고을에 많은 선비가 배출되는 등 치적을 올렸다.
과만(瓜滿: 임기 만료) 후에 봉사시부정(奉常寺副正) 및 사간이 되었는데 남양고을 백성들이 남양부사 때의 치적을 들어 진정하므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다. 1494년(성종 25) 관압사(管押使)로 연경(燕京)에 갔다가 돌아와 대사간이 되고,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지제교(知製敎)를 역임하였다. 형조참의를 거쳐 전라관찰사로 임명되어 선정으로 그 이름이 높았다. 다음 해 신병으로 돌아와 첨지중추부사로 있었다. 대부(大夫)가 되었으나 가산을 돌보지 않았고 효우(孝友)가 돈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