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통사』의 원문에 한글로 중국어의 독음을 달고 언해한 책이다. 간기는 없으나, 1677년(숙종 3) 10월로 되어 있는 이담명(李聃命)의 서문과 같은해 11월로 되어 있는 내사기(內賜記)에 의하여 1677년에 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서문에 의하면, “최세진(崔世珍)의 『번역박통사』는 이미 당시에 볼 수 없었는데, 평안도 선천군의 역학(譯學) 주충(周?)이 민가에서 최세진의 『노박집람(老朴集覽)』을 얻게 되자 사역원제조 권대웅(權大雄)이 역관 변섬(邊暹)·박세화(朴世華) 등 12인을 시켜 『노박집람』을 참고하여 이 책을 편찬하고, 변섬과 박세화의 사재로 간행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3권 3책. 목판본. 『박통사언해』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와 이담명의 내사본 등이 전하는데, 1943년 경성대학에서 『규장각총서(奎章閣叢書)』 제8로 영인하였고, 1983년 아세아문화사에서 『노걸대언해』와 함께 다시 영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박통사신석언해』가 서울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데, 1985년 홍문각에서 영인하였다가, 2004년 규장각 소장의 『박통사언해』와 『박통사신석언해』를 『규장각자료총서』로 영인하였다.
체재는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와 같으나, 『노박집람』 중에서 『박통사집람』은 해당 구절의 주석으로 넣고 『노걸대집람』과 『단자해(單字解)』를 부록으로 한 점이 다르다.
『박통사』는 100년 가까이 중국어 학습서로 사용되어 오던 중, 원문인 중국어가 시의(時宜)에 맞지 않아서 중국사람과 소통(疏通)되지 않은 점이 있어서 역관 김창조(金昌祚) 등이 이 책을 『박통사신석(朴通事新釋)』 1권으로 만들고, 이를 언해한 『박통사신석언해』 3권을 1765년(영조 41) 평양 감영에서 동시에 간행하였다.
『박통사신석언해』의 체재는 이 책과 같으나, 주석으로 수용되었던 『박통사집람』이 『박통사신석』의 주석으로 일부 옮겨지면서 삭제되고 『노걸대집람』 등 부록이 없어진 점이 다르다.
본서와 『박통사신석언해』는 모두 지난 시기의 중국어 학습서이지만, 현대에서는 국어와 중국어의 역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언해문은 『번역박통사』와 비슷한 내용이므로 그 대조로써 국어사의 변천과 번역 양식의 차이를 알게 하며, 원문의 한자에 병기된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은 중국어 음운사 연구에 이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