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갑산 출신. 조선예수교회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단군신앙을 숭상하다가 20대에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특히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재능을 발휘, 1930년 졸업 때에는 개교 이래 가장 우수한 원전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졸업한 뒤 곧바로 원산의 마르다윌슨 여자신학교에 부임,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및 요한복음의 강의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사도 바울보다는 요한의 신비에 호감을 표시하였고, 스웨덴의 신비주의사상가인 스웨덴보르그(Swedenborg, E.)의 사상에 심취하는 한편, 당시 기성교회의 부패와 경직성을 비판하고 혁신을 부르짖는 신앙부흥운동에 동참하였다.
원산 광석동에 신학산(神學山)이라는 기도소를 차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및 『수색교회참회록』·『요한복음』 등을 새로 번역하여 강해하였다.
1933년에는 스웨덴보르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새 생명의 길』이라는 소책자를 펴냈는데, 그 내용이 성경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하여 많은 물의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1929년부터 예수가 직접 친림하였다는 유명화(劉明花)라는 여인이 원산 지방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수많은 입신(入神)·방언(放言)·예언(豫言) 등의 현상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도 거기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장로교평양노회에서는 그를 이단으로 단정하였다.
1935년에는 평안북도 철산에서 새 주님이라는 여권사 김성도(金聖道)와 같이 성주교단(聖主敎團)을 만들었으나, 이른바 혼음사건(混淫事件)이 일어나 또 한번 물의를 빚게 되었다. 1946년에 월남하여 춘천사범학교와 공주사범학교에서 교직생활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