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동을 두드려 펴고 땜질하여 백동죽을 만드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으므로 이에 관한 세공솜씨가 뛰어났다. 따라서 순동이나 아연 합금의 놋쇠로는 담뱃대를 잘 만들지 않았다.
구리와 니켈 합금의 백동은 경도가 크고 녹슬지 않아 가공이 용이하고 완전히 냉각된 상태에서만 단조(鍛造: 금속을 가열하고 두드려 만드는 일)한다.
백동에 오동(烏銅: 검은 빛이 나는 赤銅)과 은을 부착시킬 때는 미세하게 은땜을 하며 줄을 썰어 다듬는다. 담뱃대가 일상 기호품의 도구인 까닭에 점차 사치스러워져 백동에다 오동 · 금 · 은으로 치레한다든지, 설대(담배통과 물부리 사이에 맞추는 가는 대)에 낙죽(烙竹) · 각죽(刻竹)하기도 한다.
백동은 주석에 니켈 20% 정도를 넣으며, 재질을 무르게 하여 일하기 편하도록 석(錫) 3∼5%를 넣기도 하고 빛깔을 내기 위해 비상을 첨가하기도 한다. 백동의 붕사땜에는 니켈과 주석을 50%씩 섞은 합금을 사용한다.
오동은 구리에다 금 30%, 또는 금 대신 은 20∼23% 합급한 것이고 은땜에 쓰는 합금은 은 60%, 주석 40%이다. 또 오동을 오목새김한 자리에 상감하는 은 또는 금은 으레 10성(成)으로 한다.
이처럼 백동연죽장의 기능은 일반 백동일과 달라서 여러 가지 합금에 능숙해야 하며, 그러한 금속들을 매우 얇은 상태로 단조해서 무늬를 넣고 모든 부분을 땜질해야 하는 복합적인 기능을 요하므로 금은세공과 같은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한다.
무늬 없는 백동죽은 민죽, 무늬 좋은 것은 별죽(別竹) · 꽃대라 부른다. 별죽은 재료에 따라 은물죽(銀物竹) · 오동죽이라 하고, 토리(끝에 씌운 쇠고리)의 무늬에 따라 송학죽 · 매화죽 · 용물죽 · 태극죽 등 여러 가지로 부른다.
대체로 18세기 이후 사치풍조가 생긴 것으로 보이나, 담배의 전래는 임진왜란 이후이기 때문에 경공장(京工匠)에는 이 같은 장인이 없다. 한말 이래의 명산지는 동래 · 김천 · 남원 · 안성 등지였다.
현재 기능보유자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의 황영보(黃永保)이며, 경기도에서도 1989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데, 그 기능보유자는 안성의 양인석(梁麟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