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647년(선덕여왕 16) 1월 상대등 비담이 염종(廉宗) 등과 더불어 선덕여왕(善德女王)에서 진덕여왕(眞德女王)으로의 왕위계승에 반감을 갖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전(金庾信傳)에 특히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비담은 그 출신을 잘 알 수 없으나 645년(선덕여왕 14) 11월에 귀족회의(貴族會議)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랐던 것을 보면 본래 진골(眞骨)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담이 상대등에 오른지 약 1년 남짓 지난 뒤에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女主不能善理)’는 것을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비담 · 염종 등 반란군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군(王軍)은 월성(月城)에 진을 치고 10일간이나 서로 공수(攻守)했는데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이에 비담은 반란군에게 “별이 떨어지는 곳에 반드시 피를 흘린다 했으니 이것은 여왕이 패할 징조이다”라고 독려하였다. 기세가 오른 반란군의 떠들어대는 소리가 땅을 진동할 정도였다. 그러자 김유신은 오히려 ‘길흉(吉凶)은 정해져 있지 않고 오직 사람이 하기에 따른 것입니다’라며 왕을 안심시키고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안기고 연(鳶)에 실어날려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하였다. 그리고는 이튿날 아침에 “어젯밤 떨어졌던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라고 선전하였다. 또한 백마를 잡아 별이 떨어진 곳에 제사드리며 ‘하늘의 도는 양이 강하고 음이 약하지만, 사람의 도는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습니다. 그것이 바뀌면 난이 되는 것입니다. 비담 등이 신하로서 임금을 도모하며 아래서 위를 범하니, 이것은 이른바 난신적자(亂臣賊子)로서 사람과 신령이 함께 미워할 일이요, 하늘과 땅 사이에 용납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축원(祝願)한 뒤, 장졸(將卒)을 독려해 반란군을 공격하였다. 마침내 비담 등이 패해 달아나자 추격해 진압하고 주모자의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聖骨)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 · 김춘추(金春秋) 등 율령국가(律令國家)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武烈王系)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비담이 난을 일으킨 원인에 대해서는 비담이 표방한 ‘여주(女主)는 잘 다스리지 못한다’의 대상을 선덕여왕으로 보고 비담을 의장으로 하는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선덕여왕을 폐위하려 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642년(선덕여왕 11)에 백제로부터 서쪽 변경 40여 성(城)을 빼앗기고 대야성(大耶城)마저 함락되자 당나라에 원군을 요청했는데, 당시 당 태종(太宗)은 세 가지 대책을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여자가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이웃 나라가 업신여기고 쳐들어 오는 것이므로 여왕을 바꾸어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당 태종의 발언이 신라에 파장을 미쳐 화백회의에서 선덕여왕의 폐위를 결정했을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비담이 난을 일으킨 시기가 당 태종의 발언으로부터 4년이 지난 시점이라는 것과, 비담의 반란을 진압하는 와중에 진덕여왕이 즉위한 점 등을 들어, 선덕여왕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다음 후계자로 진덕여왕이 선정되자 화백회의에서 반발한 대상을 진덕여왕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비담의 난이 일어난 와중에 선덕여왕이 사망하고 진덕여왕이 즉위한 것을 두고, 선덕여왕의 사망원인을 반란 세력에게 피살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선덕여왕이 자신의 죽음과 함께 장지(葬地)를 미리 언급한 점 등을 들어 위중한 상황에서 자연사했던 것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