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사(石泉寺)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 인근 용화사(龍華寺)의 승려가 창건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수도처의 하나로서 많은 수도승들이 거처하였고, 효험이 많은 약수가 있어서 요양객들도 즐겨 찾았던 절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폐사가 되었으며, 폐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이 절의 바위틈에서는 매일 1인분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어느 날 욕심 많은 한 수도승이 쌀을 많이 나오게 하려고 바위틈을 크게 뚫었으나 쌀은 나오지 않고 샘이 터지면서 뱀이 몰려 나왔다.
그 뒤 샘이 흐려지게 됨에 따라 승려들이 모두 떠나게 되었고, 절은 자연히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폐사설화의 대표적인 유형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절터에는 석단의 흔적이 있으며, 석재와 기와, 식기류의 파편 등이 출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