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중원 출신. 1919년 3월 31일 동지들과 함께 이희갑(李喜甲)의 집에서, 이튿날 신니면 용원(龍院)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단경옥(段慶玉)·이희갑·이강렴(李康濂) 등과 독립선언서를 제작, 등사하였다.
4월 1일 약 200명의 군중이 모인 신니면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그 뒤 계속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다시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일본헌병의 감시와 학대가 계속되자 독립만세를 외치고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