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립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시대 선전관, 보성군수, 재령군수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입지(立之)
시호
장정(壯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82년(선조 15)
사망 연도
1667년(현종 8)
본관
진천(鎭川)
주요 관직
선전관|보성군수|재령군수
관련 사건
임진왜란|이괄의 난|병자호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선전관, 보성군수, 재령군수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입지(立之). 아버지는 백순(伯純)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 때 11세의 나이로 아버지가 검지산(黔指山)에서 병력을 모집하여 싸우다가 죽고 형제도 포로가 되어 밀실에 갇히게 되자 송곳으로 벽을 뚫고 밤에 달아나 아버지의 시체를 수습하여 안장하였다.

1616년(광해군 8)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고 1623년 인조반정 후에 평안병사 이괄(李适)의 휘하에 들어갔다. 이듬해 이괄이 군량미 조달차 송립을 자산으로 보냈는데 영변에서 이괄의 반란 소식을 듣고 이괄에게 거짓으로 투항, 동료 허전(許佺)과 함께 손가락을 깨물어 이괄의 신임을 받고, 반군 3,000명을 거느린 선봉장이 되었다.

병졸을 동쪽으로 이끌고 가다가 이괄의 의심을 받았으나 토산에서 관군과 내통, 투항하여 이괄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괄의 난이 평정된 뒤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고 보성군수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죽산부사로서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여 굳게 지켰고 그 공으로 재령군수가 되었으며, 장수산성(長壽山城)을 쌓았다. 그 뒤 한성부윤이 되었다가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라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장정(壯靖)이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검천지(黔川誌)』
『몽오집(夢梧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