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천경(天擎). 아버지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송구(宋駒)이며, 어머니는 여산송씨(礪山宋氏) 숙인(淑人)이다.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며, 1557년(명종 12)에는 기대승(奇大升) 밑에서 수학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에 향시에서 장원을 하였으며, 1555년에 사마시에서 일등으로 합격하였다. 1556년 별시에 급제하여 괴원(槐院)에 발탁되었으나 윤원형(尹元衡)의 미움을 받아 교서(校書)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문란한 정치상황 아래에서 교서의 임무를 올바로 수행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그 자리에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이 후 송정황은 벼슬의 길을 끊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할 목적으로 기대승을 찾아갔다. 1557년에 기대승의 뜻을 받들어 주서(朱書) 가운데 긴요한 곳만을 초출(抄出)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을 편저하고 또 이 책의 발문(跋文)도 직접 썼다고 한다.
송정황은 26세로 요절하였으나, 송정황이 남긴 시(詩)나 부(賦) 등을 보면 웅장하고 유려한 문장 속에서 깊은 학식과 고매한 인격을 엿볼 수 있다. 김인후는 송정황의 학문과 인품을 이윤(伊尹: 상나라 명재상)과 안자(顔子)로 비교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은 김인후의 칭찬이 정말로 맞는 말임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보아 충분히 송정황의 학식과 인품을 짐작할 수 있겠다. 저서로는 『정자송공유고(正字宋公遺稿)』 3권 1책이 있다.